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책임감의 무게에서 벗어나기
나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다. 거절도 하고, 실망도 안긴다. 나를 만난 사람들은 나에게 책임감이 강하다고 말한다. 때론 그 말의 무게에 짓눌려 도망가고 싶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몰라 그저 삶을 방치했던 적도 있다. 책임감. 어릴 적부터 들었던 말이다. 처음엔 그 말이 칭찬처럼 들렸다.
믿고 맡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어딘가 뿌듯했고, 나 스스로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말은 점점 무게가 되어 어깨를 짓눌렀다. 책임을 다해야만 하는 사람, 실수하면 안 되는 사람, 누군가의 기대에 반드시 부응해야 하는 사람. 그렇게 스스로를 가두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였다.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하는 것이 두려워졌다. 나로 인해 실망하는 얼굴을 보는 것이 힘들었고, 나를 믿는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려 애썼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정작 나 자신을 가장 많이 실망시키고 있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나는 왜 이렇게 힘든가?"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책임감이란 이름 아래 무거운 짐을 지고 버텨오던 날들. 때로는 그 무게에 숨이 막혔다. 도망가고 싶었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치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책임감이라는 덫에 스스로를 묶어버린 건 결국 나 자신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모든 걸 안고 갈 필요가 있을까?"
상처를 주지 않고, 모두를 만족시키며 살 수 있는 사람이 관연 존재할까? 사람은 누구나 실망하고, 누구나 상처받는다. 그리고 나 나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렇다면 나도 누군가를 실망시킬 수 있고, 때로는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그것은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저 불완전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살을 인정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책임감'이라는 이름 아래 쌓였던 죄책감과 두려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혹시 내가 이기적인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고, 거절하거나 도망치고 싶을 때마다 스스로를 비난했다. 그러나 점차 깨달았다. 거절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건강한 경계라는 것을.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려다 보면 결국 아무도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책임감과 자기희생은 다르다. 타인을 버려야 하는 것과 나 자신을 희생하는 것은 구분되어야 한다. 나는 누군가를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지만, 그로 인해 나 자신이 무너지게 해서는 안 된다. 내가 건강해야 타인에게도 건강한 에너지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삶을 방치했던 그 시간들도 의미가 있었다. 멈춰 서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었고, 방황해야만 깨닫는 진실도 있었다. 그 시간들은 내 안의 균열을 드러냈고, 그 틈 사이로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힘들어했을까?"라는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천천히 내 안을 들여다봤다.
결국, 모든 관계에는 적당한 거리감이 필요하다. 너무 가까우면 숨이 막히고, 너무 멀어지면 소외된다. 그 균형을 찾는 것이 성숙한 관계의 핵심이라는 것을 배웠다. 때로는 거절할 줄 알아야 하고, 때로는 담담히 실망을 안길 줄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나도 숨 쉴 수 있고, 상대방도 진짜 나를 만날 수 있다.
완벽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실망을 안겨도 괜찮다. 중요한 건 내가 진심을 다했는가이다. 그 진심은 언젠가 누군가에게 닿을 것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든다.
삶은 결국 상처와 치유의 연속이다. 누군가를 상처 입히기도 하고, 또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기도 한다. 그 안에서 우리는 성장하고,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렇게 또 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니 너무 완벽하려 애쓰지 말자.
실망을 안겨도 괜찮고, 거절해도 괜찮다. 가장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도 나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나답게 살고 있는가?"
오늘도 글 쓰는 구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