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동안 지독한 무기력증에 시달렸다.
사실 나는 그렇게 강한 사람이 아니다. 쉽게 지치고 힘들어한다. 하지만 나의 이런 속내를 모르는 사람들은 말한다.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고. 이 말이 처음엔 듣기 좋았다. 뭔가를 책임진다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물론 세상에는 무책임한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을 굳이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분명, 내가 책임감이 강하다는 건 나만의 장점일 수 있다. 하지만 때로는 그 장점이 내 발목을 잡는다. 쓸데없는 곳에 친절을 베풀다가 실속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주고받음의 균형이 맞지 않을 때면 속앓이를 하기도 한다. 이런 내가 혹시 속 좁은 사람으로 비치지는 않을까 내심 그런 생각에 마음이 더 불편해진 적도 많았다.
유튜브, SNS, 각종 매체에서는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들뿐이다. 실패담을 본다고 해도, 왠지 공감이 잘 되지 않는다. 공감이 안 되는 건 어쩌면 우리가 실패보다는 성공에 더 열망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느새 마흔셋이 된 나는, 겉보기엔 이룬 것도 많아 보이지만 여전히 이루고 싶은 것이 더 많다.
그런데 그 욕심이 다시 나를 옭아맨다. 열등감이 또 나를 옥죄어 온다. 머리는 돌덩이처럼 굳어버리고, 몸은 예전처럼 다시 뚱뚱해진다. 술을 찾고, 좋지 않은 생각 속에 헤맨다. 이런 감정이 몇 달이나 이어졌는지 모르겠다. 사람들에게 티 나지 않게, 들키지 않게 애써왔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부질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나는 너무 솔직하지 못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하지도 않은 일들을 마치 이룬 것처럼 행동했다. 그러면서 금세 진정성을 잃어버렸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좋았던 순간들도 있었지만, 내가 열망하던 그곳에 닿지 못한다는 걸 깨달은 뒤로 무기력은 더 심해졌다. 더 창피해지기 전에 솔직해지고 싶다. 못하는 건 못하는 거다.
오늘도 몇 시간의 사투 끝에 겨우 달렸다. 그렇게 뛰고 나니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달리기는 정말 나에게 큰 힘이 된다. 하지만 책을 쓸 때만큼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 지금도 내가 무슨 말을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잠시 멈춰 읽어보니 두서가 없다. 그래도 쓴다. 오늘 카톡 몇 마디를 제외하면 말을 거의 안 했다. 외롭지는 않다.
내일도 새벽에 일이 있다. 일요일엔 해외 출장이 예정되어 있다. 그래, 다시 시작하자. 이렇게 짧은 글을 써 내려가는데, 생각하고 타이핑하는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러가 버렸다. 기초부터 하나씩 다시 해보자.
오늘도 글 쓰는 재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