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과 대화가 어색해지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어느 순간부터 점점 거리가 생겼고,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더 편해졌다. 사람이 그립지 않았던 건 아니다. 그래서 어울리지 않는 옷을 걸치듯,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과도 일부러 어울려 보았다. 약속을 잡고,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들의 말에 맞장구쳤다. 마치 말 없는 광대처럼, 내 진심은 감춘 채 공감하는 척만 했다.
그런 시간들이 지나고 나면 문득, 내가 남긴 글들을 들춰보게 된다. 무수히도 많이 쓴 글들. 가끔은 내가 이 글들을 정말 썼나 싶을 만큼 낯설다. 그렇게 많은 글을 쏟아냈는데도, 내 삶은 여전히 제자리인 것처럼 느껴진다.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보면 매일이 똑같고, 삶은 그저 반복의 연속이다.
나는 문학을 전공하지 않았다. 전문적으로 글을 배운 적도 없다. 그저 글쓰기 책 다섯 권을 사서 읽었을 뿐이다.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나는 간절히 작가가 되고 싶었다. 누구도 내게 그 타이틀을 주지 않았기에, 결국 스스로에게 ‘작가’라는 이름을 건넸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 간절함을 붙잡고 싶었다. 그러나 스스로에게 내린 그 칭호는 그리 오래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글을 쓰는 일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두 해 전, 마음이 많이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는 사주팔자도 보고, 타로도 보고, 별자리 운세까지 들여다봤다. 여러 역술가들을 만났지만, 그중 한 분이 상담의 마지막에 말했다. “글을 쓰세요. 글을 쓰면 마음이 정리돼요.” 속으로는 생각했다. ‘나, 이미 글을 쓰는 사람인데…’ 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 말이 유독 기억에 남는 이유는, 상담 중에 내가 했던 한마디 때문일지도 모른다. “전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아무도 제 얘기를 들어주지 않는 것 같아요.” 그 말을 들은 그는, 하고 싶은 말이 많다면 그걸 글로 풀어보라고 말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루도 쉬지 않고 몇 년을 써 내려갔다. 그 결과 책도 내게 되었고, 처음엔 정말 뭔가 이룬 것 같아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부끄러운 마음이 앞선다. 그 책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고, 결국 폐기되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느껴질 정도다. 나는 아직도 부족하고,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깨닫고 있다.
요즘은 자주 내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마흔이 넘어서야 비로소 삶에 대한 태도가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보다 어린 친구들의 깊이 있는 생각과 눈빛을 보면 부럽고, 그 젊음 속에 깃든 가능성을 보며 왠지 그들의 미래가 더 찬란할 것 같다는 예감도 든다.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들이 나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걸어갈 거라는 믿음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나는 나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앞으로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까. 원래도 생각이 많은 편이었지만, 요즘은 그런 질문들이 더욱 자주 떠오른다. 뭣 하나 제대로 이룬 것이 없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몰아세우기도 하고, 한심하다고 여길 때도 많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조용히 속삭이는 또 다른 내가 함께 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쇼펜하우어는 “혼자 있는 시간은 축복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사교성보다는 비사교성이 인간을 더 발전시킨다고도 했다. 그 말을 믿고 싶지만, 동시에 이런 의문도 든다. 나는 과연 어떤 방향으로 성장하고 싶은 걸까.
사실 나는 사람이 그립다.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고, 연결되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종종 내게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그들이 진심을 나눌 때 나의 마음은 가끔 따라가지 못한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이며 아는 척을 하고, 이해한 것처럼 제스처를 보일 뿐이다. 눈치채지 않게 연기하며 피로를 쌓아간다.
결국 그런 피로감이 나를 더 고립되게 만든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피하고, 스스로 고독을 선택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인정 욕구가 큰 사람이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고, 좋아해 주었으면 좋겠고, 잘한다고 칭찬받고 싶다. 이런 내 마음을 드러내면 어김없이 듣게 되는 말이 있다. “내면이 약하구나.” 그래, 그 말도 인정한다. 나는 내면이 약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환호와 지지, 성원은 내게 분명한 에너지가 된다. 살아갈 힘이다. 좋은 집에서 살고,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살아가고 싶은 마음은 결코 나쁜 게 아니다. 오히려 그런 삶을 꿈꾸고 있는 지금의 내가, 아직 거기 도달하지 못한 현실 앞에서 무거운 마음을 품게 된다.
마흔이 넘은 지금, 나는 아직도 고민하고, 헤매고, 내 안에 오래 눌러두었던 이야기들을 꺼내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닌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나에겐 이 글 하나를 쓰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걸렸다.
참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이 글을 쓰기까지.
마음속에서 오래 맴돌던 말들이
이제야 조금씩, 문장이 되기 시작했다.
글 쓰는 재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