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늦잠 좀 자면 안 되나?

by 재윤

토요일이다. 어제는 조금 늦게 잠이 들었다. 사실 ‘늦게’라는 표현을 쓰긴 했지만, 평소보다 고작 30분 더 깨어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나는 오늘 하루를 ‘피곤하게 시작했다’고 느낀다. 머리는 멍하고 몸은 찌뿌듯하다. 그 30분이 마치 전쟁이라도 치른 양, 내게 너무도 큰 영향을 미치는 듯 느껴진다.


나는 오랫동안 불면증을 앓아왔었다. 이 문장에서 시제를 과거로 썼지만, 사실 지금도 여전히 불면증의 그림자는 내 곁에 머물러 있다. 다만 예전과 비교하자면, 그 어둠이 훨씬 흐려졌다. 예전엔 밤마다 수면이라는 고지에 오르기 위해 정신의 전투를 벌였다면, 지금은 조금 더 느슨하게, 조금 더 부드럽게 그 어둠을 받아들이려 한다.


이 변화가 가능했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자포자기’한 덕분이었다. 처음엔 이 표현을 쓰는 게 망설여졌지만, 결국 솔직해지기로 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애써 이겨보려는 시도를 멈췄다. 불면이라는 적과 싸우는 대신, 그것과 같이 누워 보기로 했다. 잠이 오지 않으면 오지 않는 대로, 오면 오는 대로. 마음을 그렇게 놔버리자, 이상하게도 잠이 더 자주 찾아오기 시작했다.


심리학자 칼 로저스는 말했다. “우리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결코 변할 수 없다.” 이 말이 딱 내 이야기였다. 나는 그동안 ‘반드시 자야 해’, ‘오늘은 피곤하니까 꼭 자야 해’라는 강박에 스스로를 옥죄고 있었던 것이다. 그 강박이 뇌를 더 각성시키고, 몸을 긴장시켰다. 피곤한데도 잠이 오지 않는 밤, 그건 몸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가 만들어낸 결과였다.


우리는 누구나 좋은 아침을 꿈꾼다. 상쾌한 기분으로 눈을 뜨고, 개운한 몸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그런 아침. 그래서 우리는 밤마다 ‘제발 오늘은 푹 자게 해 달라’는 기도를 올리곤 한다. 그런데 그 기도가 집착이 될 때, 오히려 잠은 도망가 버린다. 역설적으로, 잠을 향한 갈망이 커질수록 우리는 더 깊은 불면의 수렁에 빠져든다.


나는 이 싸움을 오래 했다. 아니, 사실 지금도 하고 있다. 다만 이제는 그 싸움을 잠과 벌이는 게 아니라, 내 안의 강박과 벌인다. 잠을 자야만 한다는 집착을 내려놓는 싸움, 그것이 요즘 내가 매일 밤마다 연습하는 일이다.


예전엔 잠이 오지 않으면 새벽까지 억지로 눈을 감았다. 눈꺼풀에 힘을 주고, 머릿속은 ‘빨리 자야 해’로 가득했다. 그러다 결국 지쳐 포기하면 해가 뜨곤 했다. 그런 날은 아침부터 무기력했다. 하루 종일 비몽사몽,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시간을 흘려보내고는 다시 다가오는 밤을 두려워했다.


그 악순환을 끊어낸 건 아주 단순한 변화였다. ‘안 자도 된다’고 마음먹는 일. 믿기 어렵겠지만, 그렇게 생각한 날부터 이상하게 잠이 들기 시작했다. 몸은 긴장을 풀었고, 마음은 조용해졌다. 뇌는 더 이상 투쟁을 멈추었고, 잠은 그렇게 조용히, 아무렇지 않게 찾아왔다.


사실 인간의 뇌는 ‘하지 말라’는 명령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잠을 자야 한다’는 생각은 곧 ‘잠을 못 자면 안 된다’는 공포로 이어지고, 그 공포는 다시 몸을 각성시킨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아이언리컬 프로세싱(ironic processing)’이라 부른다. 어떤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할수록, 오히려 그 생각이 더 떠오르게 되는 심리 기제다. ‘잠’이라는 생각을 내려놓자, 오히려 잠에 가까워질 수 있었던 이유다.


우리는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려 한다. 나도 그랬다. 나는 나를 완벽히 통제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얼마나 오만한 착각이었는지 깨달았다. 나는 내가 나를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 앞에 망연해졌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마음 한구석이 이상하게도 편안해졌다.


불면은 어쩌면 삶의 메타포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끊임없이 통제하려 한다. 감정을, 관계를, 시간표를. 하지만 삶은 언제나 예측을 비껴간다. 결국 진짜 지혜는, 피곤한 싸움을 멈추고 받아들이는 데 있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숨을 고르는 일.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있다면, 어쩌면 당신도 잠과의 싸움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혹은 잠이 아닌 다른 무언가와 싸우고 있을 수도 있다. 애써 이겨내려 애쓰는 그 마음이 오히려 더 지치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오늘 밤엔 이렇게 말해보자.

"그래, 오늘은 못 자도 괜찮아.

내일은 조금 피곤해도, 결국 괜찮을 거야."


어쩌면 그 순간, 당신의 뇌는 긴장을 풀고, 마음은 조금 느슨해지고, 잠은 아주 조용히 다가올지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하루하루, 삶과 타협하며 살아간다. 완벽하지 않아도, 조각조각 엉켜 있어도. 잠들지 못한 밤에도, 삶은 계속된다. 그리고 그게, 생각보다 괜찮다.


오늘도 글 쓰는 재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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