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나.
얼마 전 가족 여행으로 베트남에 다녀왔다. 정말 오랜만이라 처음엔 조금 어색했지만, 가족이라는 건 참 신기하다. 그 어색함이 금세 사라지고, 사소한 일에도 웃고 떠들며, 먹고 마시고 걱정과 시름을 잠시 내려놓게 만든다. 인생에서 몇 번 없을 ‘온전히 편안했던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저녁 식사와 함께한 술 한 잔이 서로의 마음을 지나치게 솔직하게 만들기도 했다. 누군가는 눈물을 흘리고, 누군가는 자신의 마음을 방어하듯 말이 길어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여행에서 술이 빠지면 뭔가 허전하지 않나. 이 또한 여행의 한 장면이라 생각하면 될 일이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가족 앞에서 속마음을 드러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느꼈다. 마음을 열고 진심을 내보이는 순간은 늘 조심스럽고 두려운데, 그래도 할 수 있는 이유는 ‘가족’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야기가 나에게 머물렀을 때, 나는 문득 가족들이 평소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각자의 기준으로 나를 판단하는 것이 억울하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 우리 모두는 타인을 평가한다. 그 기준은 그 사람이 살아온 흔적, 말투, 행동에 기대어 만들어지겠지만, 우리 가족처럼 20대 이후로 오랜 시간을 떨어져 지내고 1년에 몇 번만 만나는 사이라면, 그 평가가 온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
어린 시절의 나는 철이 없었고, 누나와 엄마는 그 모습을 오래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눈 속에서 나는 여전히 ‘철없는 아들, 동생’일지도 모른다. 처음엔 야속했지만, 곧 깨달았다. 나 역시 누군가를 말할 때, 내 기억 속 모습을 꺼내와 그 사람을 규정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사람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 기억을 바탕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여기다.
기억한다는 것은 남의 영역이고, 어떤 모습으로 남고 싶은지는 내 선택이라는 것.
그 당시 내 상황과 사정이 아무리 절박하고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해도, 타인의 기억 속 내 모습까지 바꿀 수는 없다. 다만, 지금부터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어떻게 살아갈지는 전적으로 내 몫이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 다만 누군가가 나를 떠올릴 때, 어떤 표정과 온도로 기억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면, 그 마음만큼은 내가 지켜야 한다.
그건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내가 선택하는 나의 삶이니까.
“지금 이 순간, 당신은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오늘도 글쓰는 구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