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흔셋이다. 일주일 전, 영어 학원에 등록했다. 부끄럽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영어의 기초도 모른다. 더 부끄러운 건, 그 사실을 숨기며 살아왔다는 점이다. 마음속엔 늘 영어를 잘하고 싶은 열망이 있었다. 외국인과 유창 하게 대화하는 나를 상상해보곤 했다. 성격이 밝아 주눅들진 않지만, 입을 열지 못한다는 게 문제였다.
속으로는 수없이 말했지만, 입 밖으로는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답답함이 쌓였고, 그 답답함이 내 자존심을 조금씩 갉아먹었다. 부끄러움은 나를 깨우는 신호였다 살면서 영어를 배우려 여러 번 시도했다. 책을 사서 독학을 해보고, 유튜브로 따라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매번 오래가지 못했다.
이상하게도, 내가 만났던 여자들은 다 영어를 잘했다. 전공자도 있었고, 유학을 다녀온 사람도 있었다. 그들의 자연스러운 발음과 자신감이 부러웠다. 그들 옆에서 나는 언제나 조금 작아졌다.
그중 한 여자와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카페에서 함께 메뉴를 고르던 날이었다.
나는 무심코 물었다.
“이거 뭐라고 읽어?”
그녀는 고개를 들어 메뉴판을 봤다.
거기엔 ‘signature’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
그녀의 표정이 잠시 굳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것도 몰라?’ 하는 눈빛이 스쳤다.
나는 웃으며 넘기려 했지만, 속은 순간 얼어붙었다.
사실 나는 그 단어를 모르는 게 아니었다. ‘시그니처’라는 말, 수없이 들어봤고 의미도 잘 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영어 철자로 쓰인 그 단어를 보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알고 있는 단어와 눈앞의 글자가 따로 노는 듯했다. 그 찰나의 공백이 나를 부끄럽게 했다.
그날의 공기,
그녀의 눈빛,
내 얼굴을 타고 올라온 뜨거움까지.
모두 그대로 기억난다.
그날 이후, ‘signature’는 내 머릿속에 박혀버렸다.
잊을 수 없을 만큼 선명하게.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그 부끄러움이 오히려 고마웠다. 그 감정이 나를 깨웠다. 부끄러움은 가장 오래 남는 암기의 형태였고, 그날 이후 나는 단어 하나에도 마음을 다했다. 부끄러움은 때로 최고의 스승이다.
어릴 적 어른들이 자주 말했다.
“공부할 때가 제일 행복할 때야.”
그땐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알 것 같다. 인생의 공부는 점수를 위한 게 아니다. 살아남기 위한 것이고, 나를 잃지 않기 위한 과정이다. 수학을 잘한다고 인생이 쉬운 건 아니지만, 배움을 멈추면 세상이 점점 멀어진다. 뒤돌아보면, 그때 채워지지 못한 지적 호기심이 지금의 나를 다시 책상 앞으로 불러세운다.
사실 작년에도 같은 학원에 등록했었다. 하지만 한 달을 채우지 못하고 포기했다. 기초가 없으니 따라가기 힘들었다. 그때 만났던 한 사람이 있다. 할머니 한 분이었다.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로 책까지 내셨던 분. 그분은 매일 같은 시간에 와서 묵묵히 공부하셨다.
그 모습이 내겐 ‘의지’였다. 그분을 떠올릴 때마다 생각한다. 젊게 산다는 건 외모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라는 걸. 나는 왜 자주 미루고, 그렇게 쉽게 포기했을까. 시간은 유한한데 말이다. 죽음 앞에 당당할 순 없어도, 후회 대신 미련 없는 삶을 살고 싶다.
오늘 학원 수업을 마치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던 중, 같은 반 수강생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분의 정확한 나이는 모르지만 말에는 품격이 있었고, 언제나 밝고, 성실함이 느껴지시는 분이었다. 그런데 그분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유방암, 위암, 그리고 또 다른 암이요. 하나는 완치됐고, 나머지는 치료 중이에요.” 그 말투엔 두려움이 없었다.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 담담했고, 그저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그래도 영어는 계속 해야죠.”
그 말이 내 마음을 세게 쳤다. 그분은 병보다도, 시간보다도 삶을 더 믿는 사람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한동안 멍하니 섰다. ‘저분은 남은 시간을 얼마나 진심으로 살고 있을까.’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끝을 맞이한다. 그게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 당신은 남은 시간을 어떻게 쓰고 있는가? 무언가를 ‘얻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나 자신에게 떳떳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가?
나는 아직 영어 한 문장도 완벽히 말하지 못한다. 하지만 오늘도 학원에 갔다. 왜냐하면 그 시간이, 나를 다시 살아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오늘 외운 단어 하나, 그게 내 인생을 조금씩 바꾸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시간은 얼마나 남았나?
그 시간에 당신이 원하는 그 삶을 살기 바란다.
오랜만에 feel 받아
글쓰는 재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