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렇지 않은 하루였다.
사실 아무렇지 않다고 스스로에게 말해보지만, 그 말이 오늘따라 유난히 가볍다. 한 달을 쏟아부은 일이 조용히 미끄러져 나가버렸고, 잠을 설친 탓에 몸은 축 처져 있었지만 겉으로는 평소와 다르지 않은 척 살아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은 자꾸만 가라앉았다. 익숙한 하루를 살고 있는데, 익숙하다는 이유로 더 이상한 공허감이 밀려왔다. 간절함은 희미해지고, 한때 간절히 바라던 일들이 이루어지자 내 안에 남은 자리가 오히려 더 텅 비어버렸다.
무언가 이루었는데,
어쩐지 아무것도 이룬 것 같지 않은 그런 느낌.
실패에 대한 책을 냈지만, 나는 여전히 실패 앞에서 서툴고, 여전히 무너지고, 여전히 부끄럽다. 실패를 딛고 일어서면 삶이 조금은 부드러워질 줄 알았다. 하지만 인생은 엔딩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냥 계속된다.
기쁨도, 상처도,
회복도, 다시 그 다음의 나날들로.
하고 싶다면, 될 때까지 해야 한다는 건 분명 깨달은 진실인데 그 진실은 때로 잔인하기도 하다. 오늘도 책상 앞에 앉아 마음 한켠을 잠식하는 불안과 다툼을 벌이며 유튜브 쇼츠를 넘기고 아무 의미 없는 드라마에 몸을 기대고 있는 나를 본다. 싫다고 말하면서도 손은 멈추지 않는다. 이유를 만들고, 핑계를 붙이고, 마음은 더 깊이 꺼져만 간다.
이런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 무엇을 아는 척, 이룬 척 말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조차 떳떳하지 못한 날이다. 그래서 마음이 더 불편하다. 여전히 미래는 희미하고, 앞은 안개처럼 뿌옇다.
술을 끊은 지 40일.
처음이다.
그 사실이 자랑이기보다... 괜히 두렵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본 적이 없어서일까. 호르몬 때문인지, 마음 때문인지, 오늘은 유난히 무겁고, 말로 설명되지 않는 허무가 따라온다. 골방 같은 방 안에서 멍하니 흐르는 시간을 바라보는 내 모습이 낡은 그림자처럼 느껴진다.
누군가의 삶이 부럽고, 누군가의 여유가 미치도록 질투난다. 나는 왜 이토록 더딜까. 왜 나는 이렇게 불완전할까. 나에게 던지는 원망은 아무 데에도 닿지 못한 채 빈 공간 속에서 조용히 사라진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
그 질문은 오래전부터 나와 함께였고, 이제는 거의 숨처럼 자연스러워졌다. 외롭다는 말도 지겨워서 그냥 묵묵히 삼키고 살아간다.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오늘도 그렇게 버틴다.
문득 ‘이렇게 사느니 그냥 사라지는 게 더 편한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스친다. 하지만 죽음을 떠올리면 어김없이 두려움이 밀려온다. 그 두려움 덕분에 나는 아직 살아 있다. 그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 모르겠다.
어쩌면 그래서 차라리 로봇이 되고 싶다. 감정 없이, 망설임 없이, 원하는 것을 원하는 만큼 이루는 무딘 존재. 조급한 마음이 나를 할퀴고,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 오늘을 더 무겁게 만든다.
삶은 무엇일까.
문득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
겨울이 다가오면 마음이 더 쉽게 움츠러든다. 차가운 바람이 불면 내 안의 오래된 그늘도 함께 흔들린다. 올해가 지나고 또 한 살 더 먹으면 조금은 다른 깨달음이 올까. 그 깨달음이 내 삶 어디쯤에 조용한 의미 하나쯤 남겨주면 좋겠다.
그래도, 오늘 아침 눈을 떴다는 것. 영어 학원을 다녀왔다는 것. 지금 이렇게, 내 마음의 파편들을 글로 붙들어두고 있다는 것. 그 사실들이 오늘 하루를 겨우 흘러가게 한다. 천천히, 어둡게, 그러나 분명히.
오늘도 그렇게
하루가 지나간다.
오늘도 글쓰는 재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