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tayed.
괜찮은 척 하루를 버텼다. 웃을 땐 웃었고, 해야 할 일도 했다. 겉으로 보면 아무 문제 없어 보이는 하루였다. 그런데 밤이 되자 이유 없이 마음이 무거워졌다. 설명할 수 없는 불안, 괜히 가슴 한쪽이 저릿한 느낌.
이럴 때가 있다. 특별히 나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냥, 버티는 게 어려운 날. 맨정신으로 살아간다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은 몰랐다.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도망칠 곳 없이 내 감정을 그대로 마주한다는 뜻이라는 걸 요즘에서야 조금 알겠다.
마음이 아플 때, 우리는 흔히 무언가에 기대려 한다. 술이든, 일이든, 사람이든, 관계든. 잠시 잊게 해주는 것들 말이다. 하지만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미뤄질 뿐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더 또렷한 얼굴로 다시 돌아온다.
그래서 오늘,
나는 도망치지 않기로 했다.
도망치지 않는다는 게 앞으로 나아간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저 그 자리에 남아 있겠다는 선택이었다. 순간 감정에 매몰될 뻔한 순간이 있었다. 그대로 흘러가면 아마 더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을 것이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렇다면 붙잡고 버티는 대신 흘려보내도 되지 않을까.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내 마음을 전부 걸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그제야 조금 이해했다. 감정은 지나간다. 생각도 지나간다. 지금의 아픔도 결국은 흐른다.
남는 건 그 순간에 내가 나를 어떻게 대했는지다. 오늘의 나는 나를 밀어붙이지 않았다. 억지로 이해하려 들지도 않았고, 스스로를 책망하지도 않았다. 그냥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맨정신으로, 아픈 감정을 느끼면서도 도망치지 않고.
우리는 가끔 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괜찮아야 하고, 단단해야 하고,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고. 하지만 어떤 날은 잘 사는 것보다 정직하게 사는 게 더 중요하다.
오늘 나는 정직했다.
아팠고, 흔들렸고,
그럼에도 남아 있었다.
그래서 이 문장 하나를
조용히 마음에 남긴다.
"나는 도망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