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줏대가 있어야 해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걸 끝까지 지켜 나가는 뚝심이 필요합니다.”
“사람은 유연해야 합니다. 잘못된 방향에서의 신념은 최악의 선택이 됩니다.”
둘 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서 더 헷갈린다.
이랬다 저랬다 하면 줏대 없는 사람이라 불리고, 한 길만 가면 고집불통, 융통성 없다는 말을 듣는다. 삶은 늘 그 두 평가 사이 어딘가에 놓여 있다.
그 경계를 가늠하기 어려운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는 미래를 모른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다. 앞날을 알 수 없는 대신, 익숙한 선택과 이미 겪어본 행동을 반복한다. 안전하다는 이유만으로.
새로운 경험이 새로운 시각을 준다는 걸 알면서도
그 과정에 반드시 따르는 고통을 피하려 한다. 그래서 종종 이런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지금 느끼는 이 불편함은 내가 틀린 길을 가고 있어서일까, 아니면 원래 성장이라는 게 이런 걸까. 이 두 가지를 구분하지 못하면 뚝심은 고집이 되고, 유연함은 줏대 없음이 된다.
여행이 그렇다. 출발 전엔 설레지만, 길 위에 오르는 순간부터 고생이 시작된다. 불편하다고 해서 그 여행이 잘못된 선택은 아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고생은 희미해지고, 장면만 남는다.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개인의 미래는 알 수 없지만, 삶 전체의 방향은 어느 정도 가늠해볼 수 있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먼저 지나갔기 때문이다. 그들이 남긴 선택과 결과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아무 기준 없는 길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같은 말을 듣고 자랐다.
"공부해라."
"끈기를 가져라."
이 말들은 단순한 노력의 미덕을 말하는 게 아니다.
검증된 방향 위에 자신을 올려놓으라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주 헷갈린다. 끈기와 고집을 같은 것으로 착각한다.
어떤 일이든 100번을 반복하면 분명 달라진다는 사실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결과가 아직 보이지 않아도
그 100번을 끝까지 해내는 건 끈기다. 과정 자체가 이미 증명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100번을 해도 소용없을 거라 단정하며 그 가능성 자체를 외면하는 건 고집이다. 방향을 점검하지 않은 채 생각만 붙들고 있는 상태다.
결국 차이는 결과가 아니라
선택하기 전의 태도에서 이미 갈린다.
그래서 요즘 나는 끝까지 가야 하나, 여기서 내려와야 하나를 묻기 전에 이 길이 어디에서 검증된 것인지부터 살핀다. 불편해서 흔들리는 건지, 아니면 정말 잘못된 방향인지. 그걸 구분하지 못한 채 버텼던 시간들이
돌아보면 가장 고집스러웠던 순간이었음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오늘도 글쓰는 재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