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연시는 모임이 참 많다. 내가 있는 곳은 광화문 일대다. 청계천 거리와 광화문 광장은 춥지만, 평소보다 사람이 많아 보인다. 괜히 마음이 분주해진다. 모임이라는 건 결국 사람과의 연결 아닐까 싶다. 우리는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어 한다. 그 최소한의 구성원이 가족이다. 어린 시절 가족과의 유대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으면, 성인이 되어서 어딘가 모난 부분이 유난히 두드러진다. 완벽한 가정은 없다. 그래서 그 모난 모양도 제각각일 것이다.
사랑은 어쩌면 그 모난 부분을 서로 보듬어 주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보듬다’보다 ‘준다’라는 말에 마음이 머문다. 결국 보듬음을 받으려는 태도가 아니라, 보듬어 줄 수 있는 마음의 크기가 관계를 결정하는 게 아닐까 싶다. 관계가 어렵거나 힘들다면, 상대를 바꾸기 전에 내 마음의 크기를 한 번쯤 가늠해 봐도 좋겠다.
요즘 골프를 친다. 사실 골프에 크게 흥미가 없었다. 유행하는 건 괜히 더 하기 싫어지는, 청개구리 같은 심보가 있다. 다들 한다고 하면 일부러 한 발 물러서는 타입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바보 같다. 막상 치다 보니 재미있더라. 정확히 말하면 재미보다, 내가 생각보다 편협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과정이 더 인상 깊었다.
나는 스스로를 편견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비교적 열린 사고를 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골프 하나를 통해 알게 됐다. 나는 모순덩어리고, 생각보다 많은 편견을 안고 살아왔다는 걸. 유행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이 많이 한다는 이유만으로 무언가를 애써 외면해 왔다. 그걸 개성이라고 착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은 고집이었고, 회피였고, 세상과 거리를 두는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청개구리 같은 고집이 있다. 이걸 인정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단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삶에 긍정적이라는 걸 깨닫고 나서부터는, 나대지 않으려고 연습 중이다. 인생은 연습을 통해 완성된다고 믿는다. 이 문장을 곱씹다 보면, 당신도 이내 고개를 끄덕이게 될 거다.
세상에 절대적인 진리는 없지만, 굳이 하나를 꼽자면 반복과 행동 아닐까 싶다. 골프도 그렇다. 뜻대로 되지 않는 공을 수없이 치다 보면, 아주 가끔은 생각보다 곧게, 생각보다 멀리 날아간다. 아픔도 반복되면 무뎌지고, 달리기도 반복하면 언젠가 자신의 한계를 넘는 날이 온다. 물론 죽어라 해도 안 되는 일도 있다. 그래서 인생엔 정답이 없다. 지금 옳다고 믿는 생각이, 시간이 지나면 틀릴 수도 있을 뿐이다. 후회는 삶의 필요충족 조건이다. 이 또한 인정하면 그뿐이다.
모임 이야기를 하려고 노트북을 켰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엉뚱한 소리만 잔뜩 해놓은 것 같다. 요즘 생각이 많다 보니, 내가 또 이런다.
그래, 연말연시 모임 이야기다. 1년에 한 번, 고향 친구들을 만난다. 다들 사느라 정신이 없어 빠진 해도 있었지만, 그래도 1년에 한 번쯤은 꼭 참석하려 한다. 사실 나는 이 모임이 늘 조금 불편했다. 친구들이 싫은 건 아니다. 다만 고등학교 시절의 나는 썩 잘 살지 못했다. 정신도 건강하지 않았고, 공부도 열심히 하지 않았다. 음악을 한다며 기타를 메고 똥폼만 잡고 다녔다. 애정결핍이 심해 상처를 받아도, 무리에서 이탈되는 게 두려워 내 감정을 외면하며 함께했던 시절이다.
나는 감성적인 편이다. 작은 말에도 상처를 곧잘 받았다. 그들의 대화 방식은 내겐 이해하기 어려웠고, 그래서 주먹다짐도 잦았다. 싸움을 잘하진 못했지만, 한 번 붙으면 쫄지 않고 끝까지 갔다. 그래서인지 친구들도 나를 쉽게 건드리진 않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그들을 피했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그들이 나를 피했을지도 모르겠다. 늘 바른말만 하고, 감성적인 나를 재수 없게 여겼을 수도 있겠다. 뭐, 지금은 크게 동요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한때는 수십 명이던 무리가 지금은 여섯 명이 됐다. 그중 한 명은 못 오고, 다섯 명이 모였다. 떠나간 친구들에겐 각자의 이유가 있을 거다. 다들 세상이 정해놓은 환경의 굴레 속에서, 나름의 소명대로 살아가고 있을 테다. 모임을 하다 보면 원하지 않아도 근황이 들린다. 전혀 그럴 것 같지 않던 여자 동창이 이단 종교에 빠졌다는 이야기, 누군가의 바람 이야기. 멀리 가지 않아도 카더라 통신만으로 한 편의 드라마다.
우리는 프라이빗한 참치집에 갔다. 나는 참치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런 말을 했다간 “그럼 니가 정해”라는 말이 돌아온다. 결정에 따라주는 것도 생존의 한 방식이다. 만나면 늘 20년 전으로 돌아간다. 의미 없는 이야기로 웃고 떠든다. 사실 그래서 만나는 거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때로, 잠시나마 돌아가고 싶어서. 그땐 우리 모두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다. 반딧불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누군가는 그래서 말하지 않았던가.
찬란한 시대라고.
내가 도착했을 땐 이미 조니워커 블랙 라벨 큰 병의 절반이 비워져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옆 친구가 술을 따르려 했다.
“오늘은 안 마실 거야.”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핀잔이 쏟아졌다. 그럴 거면 왜 왔냐는 말부터 집에 가라는 소리까지. 그래도 나는 금주 중이다. 아니, 앞으로 술을 마시지 않을 생각이다. 여러 번 설명했고, 애원? 했고, 결국 우여곡절 끝에 이해해 줬다.
사실 모임 전부터 고민이 많았다. 내가 과연 잘 버텨낼 수 있을까. 그런데 마시지 않았고, 또 하루의 기록을 세웠다. 최근 10년 사이 이렇게 오래 자의적으로 금주한 건 처음이다. 그동안 나는 술에 많이 의존하며 현실을 회피해 왔다. 그럼에도 삶이 감사한 건, 큰 빚을 지고도 결국 모두 청산했다는 사실이다. 알코올 의존을 인정하며 병원도 다녔고, 오랜 시간 나를 응원하며 지켜봐 준 사람이 있다. 그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때면, 마음이 다시 무거워진다.
1월 1일에 금주나 금연을 선언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짐하기 좋은 시기인 건 분명하다. 하지만 결심은 날짜가 아니라 순간에 온다고 생각한다. 하고 싶을 때 하면 되고, 혼자가 힘들면 도움을 받으면 된다. 병원을 찾는 것도, 친구에게 솔직히 자신의 상태를 알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보다 중요한 건 스스로 인정하는 일이다. 창피해서, 혹은 자각하지 못해서 회피하는 경우가 많다. 시작은 늘 인정에서부터다.
원래는 다른 이야기를 쓰려 했다. 친구의 이혼 선언, 본인은 인정하지 않는 폭군 같은 남편, 삶의 태도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친구들 이야기. 그 짧은 시간 안에 참 많은 이야기가 오갔고, 에피소드도 넘쳐났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어쩌면 내 친구들이 내 곁에 있어 특별해 보일 뿐, 세상에 한 번쯤은 있었고 어디선가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들이 아닐까 하고. 그래서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삶에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며, 굳이 해답이 아니라 조용한 위로를 건네고 싶었다.
그런데 글이 여기까지 흘러왔다. 갑자기 감정이 가라앉는다. 나는 왜 감정을 오래 평온하게 유지하지 못할까. 그리운 사람이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글을 마무리하게 되어 마음이 조금 찜찜하지만, 여백이라고 생각해 주면 좋겠다. 원래 인생은 늘 미완 아닌가. 기회가 된다면, 자극적이지만 지극히 평범한 그들의 이야기를 다시 써보고 싶다. 약속이지만, 기약은 없다.
그냥 인생이 그렇다.
별거 없는 것 같기도 하고.
결국은 언젠가, 각자 자기 속도로 깨닫게 되겠지.
바람이나 좀 쐬고 와야겠다.
아니면 영어 공부를 하든지.
오늘도 글 쓰는 구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