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격 있는 상처.

by 재윤

오늘은 감정이 조금 괜찮다. 하루가 그렇게 흘러가도 시간이 지나면 또 괜찮아진다. 인생이 어차피 그런 굴곡과 흐름 속에서 이어진다는 걸 알 만한 나이가 되었지만, 가끔 밀려드는 고독과 그리움을 마주하는 일은 여전히 힘들다. 왜 그런 마음 있지 않나. 어디를 맞는지 알아도 맞기 전까지는 몸이 먼저 움츠러들고 두려워지는 기분 말이다. 감정을 안다고 해서 그 감정이 힘들지 않은 건 아니니, 그 또한 그러려니 하며 데리고 가려고 애쓴다.


내일은 대장 내시경을 받는다. 사실 1년을 미뤄 왔다. 치아 교정도 그랬고, 연초에는 건강검진 할인행사가 있어 가격이 많이 싸진다는 안내를 듣고 계속 미뤘는데, 그 날짜가 바로 내일이다. 내시경을 받아본 사람들은 아시겠지만 장을 비워내는 약은 참 고약하다. 지금도 화장실 신호가 몇 번씩 와서, 자주 가기 싫은 마음에 오만 인상을 쓰며 참고 있는데, 야심한 밤에 이런 화장실 이야기를 써내려가니 괜히 민망하다. 그래서 더 미안하고 민망하다는 말을 덧붙인다.


아시다시피 내 글은 꾸밈이 없다. 사실 글을 어떻게 꾸며야 하는지 잘 모른다. 책 속 문장들처럼 멋진 표현을 쓰고 싶어 고민해 본 적도 있지만, 그러면 글이 자꾸 산으로 가더라. 결정적으로 그러면 그럴수록 글이 쓰기 싫어졌다. 그냥 담담하게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생각과 의식의 흐름을 붙잡아 적는 게 가장 좋은 방법 같다.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보니, 이게 맞는 방식인지는 나도 확신하지 못하지만 말이다.


멋드러진 문장보다 삶이 묻어나는 문장이 더 좋지 않은가. 나는 그렇게 내 삶을 기록하며,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이런 사람도 살고 있고, 대한민국 어딘가에서 고군분투하며 깨지고 다치며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로 위로를 건네고 싶었다. 요즘 글에 제일 먼저 좋아요를 눌러주시는 한 분의 응원은 아무도 찾지 않던 내 글을 계속 써내려가게 만드는 동력이 되었고, 그 마음이 참 고마웠다.


오늘 글의 주제는 성장이다.

방금 전까지 나는 영어 문장을 암기하고 있었다. 나를 아는 옛친구는 기억할 것이다. 영어가 정말 늘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공부 방법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걸 4개월간 학원을 다니며 씨름한 끝에 깨달았다. 방법이 아니라 결국 반복이었다. 아주 미세하지만 차곡차곡 쌓였고, 그 과정 또한 반복이었다.


예전 나에게 영감을 많이 준 책, 원씽도 떠오른다. 딱 하나에 집중하라는 메시지를 읽어놓고도 실천하지 못했던 시간. 내 삶에 불필요한 것들을 걷어내고, 집중할 하나를 남겨 그걸 붙들라는 이야기였다. 지금 내 삶에는 큰 빈자리가 생겼다. 그 자리에 사람을 급히 채우지 않고, 영어와 골프, 투자 세 가지를 우선순위로 끌어올렸다. 그때는 내 삶의 온전한 1등이 따로 있었으니 말이다.


지금은 그 빈자리에 이 세 가지를 하나로 묶어 꽉 채우고 있다. 사주를 보니 26년은 펼치기보다 재정비하고 내면을 다지는 한 해라 했다. 마침 그런 상황이 주어졌다. 여전히 문득 떠오르는 아픔이 내 안에 존재하지만, 나는 그럴 때마다 영어 문장을 읊조리고 스윙을 한 번 더 휘두르며 마음을 고쳐 먹었다. 투자도 급할 게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 더 잘되더라.


실패에서 배우지 못하면 바보라고 내 책에 적어놓고도, 한동안 그 문장을 잊고 있었다. 그래도 이렇게 다시 생각을 정리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때의 실패한 투자 덕분에 나는 정말 많은 것을 배웠고, 조회수와 좋아요에 매달리던 마음을 내려놓자 유튜브도 한결 가벼워졌다. 남들과 비교하며 빨리 가려던 욕심을 버리니 글도 편집도 다시 제 속도를 찾았다.


차근히 삶을 채워가며 쌓아가면 때가 되었을 때 그 빛이 날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글을 쓰고, 내 삶을 단단히 지키며 걸어가면 된다 생각했다. 오늘 금융 쪽에 일하는 친구와 통화를 했는데, 서울에 집을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겠다 했다. 그래서 시골집 계획은 잠시 접기로 했다. 올해의 목표는 서울에 집을 마련하는 일이다. 친구에게 이야기를 듣고 임장도 틈틈이 다니며 내 페이스대로 나아갈 생각이다.


마음으로라도 응원해 주었으면 좋겠다. 마흔넷에 아직 자가가 없다는 사실이 가끔 나를 작게 만들지만, 그래도 나는 다시 길을 찾을 것이다. 작년에도 그 전해보다 많이 벌었고, 올해 역시 그 정도는 충분히 벌 수 있다 믿는다. 차근차근 스텝 바이 스텝으로 내 속도대로 가다 보면, 내 삶도 오늘보다 더 좋아지겠지 생각한다.

자, 오늘 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다.


그리움이 밀려왔던 어제도, 정신을 차려 살아낸 오늘도 결국 삶의 한 페이지일 뿐이다. 힘이 든다면 나 같은 사람도 어딘가에서 계속 걸어가고 있다는 걸 이 글을 통해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당신의 이야기도 기다리겠다. 멋진 밤 되시길, 그리고 오늘보다 나은 어제가 되시길 응원한다.


오늘도 글쓰는 재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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