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연 Oct 04. 2024

직장에 시험관 시술을 한다고 알려야 할까?

직장을 다니며 시험관 시술을 진행할 때 주의할 점

직장을 다니며 시험관 시술을 하기 어렵다고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주기적인 연차 사용 때문이다. 험관 시술을 하게 되면 2~3일에 한 번씩 병원에 가야 하고, 난자 채취와 배아 이식일에는 이유불문 반드시 휴가를 써야 한다.


하지만 이게 말이 쉽지, 한 달에 한 번의 휴가 사용도 눈치 보이는 K-직장인들에게 월 5회 이상의 조퇴와 2회 이상의 휴가 사용은 생각만으로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더군다나 시험관 시술이라는 게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시험관 시술을 진행하기로 한 후 내 머릿속에 가장 크게 자리한 걱정은 '회사에 어떻게 말하지?' 하는 거였다. 솔직히 남자 직원이 대부분인 부서에 젊은 여직원이 난임 시술을 한다고 말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내키진 않았지만 일주일에 두 번씩 주기적인 조퇴를 하려면 사전에 그 이유를 제대로 설명해야 할 것 같았다.


언제 말을 꺼내야 할지 눈치를 보다 팀장님과 단둘이 남았을 때를 공략했다. "팀장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평소 늘 당차게 말하던 직원이 작은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다가오니 팀장님도 무슨 일인가 싶으셨던 것 같다. 팀장님께 이런저런 상황을 설명드리며 앞으로 시험관시술로 일주일에 두 번씩 조퇴를 해야 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OO 씨 난임이었어?"


헉, 이럴 수가. 팀에 사람은 없었지만 그래도 옆 팀 직원들은 자리에 있었는데... '난임이었냐'는 그 다섯 글자가 조각조각 분절되어 날카롭게 내 귀의 고막을 뚫고 가슴에 박히는 것 같았다. 순간적으로 눈물이 나오려는 걸 꾹 참고, "결혼한 지 5년 됐는데 아이가 안 생겨서요"라는 구차한 답변을 한 채 자리로 돌아왔다. 얼굴이 빨개졌다. 쥐구멍이 있다면 거기라도 숨고 싶을 정도로 너무나 수치스러웠다.


목이 아프면 이비인후과를 가고, 눈이 아프면 안과를 가고, 마음이 아프면 정신과를 간다. 같은 이유로 난임병원을 다닌다고 한 것뿐인데, 난밍아웃을 한 순간 당차고 야무진 직원에서 여자구실 못 하는 문제 있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공기 속에 섞여 흐르던 차가운 정적과 흠칫 놀라며 날 쳐다본 그의 눈빛, 오랫동안 내게 상처로 남았던 그의 반응은 당시 '난임병원'을 다닌다는 사람을 향한 대다수의 인식이었다.  


수치심과 맞바꾼 주기적인 조퇴, 덕분에 그 후로는 별다른 설명을 덧붙이지 않고 병원을 다녔고 다행히 시험관 시술 1차 만에 임신에 성공했다. 임신테스트기에서 두줄을 확인한 순간, 이제 더 이상 회사에 개인적인 일로 양해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둘째 시험관 시술 때는 회사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진행했다. 채취와 이식 일정으로 휴가를 써야 할 때는 집에 일이 있다고 둘러댔고, 2~3일에 한 번 난포 크기를 확인하러 갈 때는 출근 전 시간을 활용했다. 휴가나 조퇴를 써야 할 때마다 핑계를 생각해 내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었지만, 마음은 오히려 이쪽이 편했다. '비밀리에 시험관 시술 진행하기 작전'은 두 달 만에 성공으로 끝이 났다.




회사에 내 비밀을 아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 일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었다. 내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있었어도, 'OO부서 OOO(이름)'하면 시험관 시술로 아이를 출산한 난임직원으로 소문이 자자했기 때문이다.


난임의 꼬리표가 붙으니, 둘째와 셋째를 임신했을 때는 "이번에는 자연이야?" 하며 능청스럽게 물어오는 사람도 있었다. 호기심 가득한 그들의 눈망울을 보니 그 질문이 무례한 말인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만약 난임 시술을 앞둔 직장인이 내게 "회사에 시험관 시술(또는 인공수정)을 한다는 걸 알릴까요?"라고 묻는다면 되도록 말하지 마세요라고 답해주고 싶다.


물론 회사 분위기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 사전에 얘기함으로써 동료들의 진심 어린 응원과 지지, 소소한 배려도 받을 수 있고, 병원도 편하게 다닐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을 수 있지만, 혹여나 '엄마가 되고 싶다'는 우리의 간절한 바람이 해 질 녘 누군가의 가벼운 술 안줏거리가 되어 상처로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되기 때문이다. 


시험관 시술로 임신을 했든, 자연스럽게 임신이 됐든 사실 그 과정은 중요치 않다. 물론 그 안에서 우열도 없다. 소중한 한 생명을 잉태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축복받을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상처받지 말고, 무한 축하만 받길 바란다.   


시험관 시술은 임신이라는 끝이 있지만, 한  붙은 '난임'의 꼬리표는 끝없이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이전 03화 이상하고 어려운 난임세계 용어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