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알고 가면 덜 아프지 않을까요?
원래 사람들은 낯설고 새로운 일을 앞두면, 그로 인해 좋아질 점보단 안 좋은 점을 먼저 찾아보게 된다. 내겐 시험관시술이 그랬다.
병원 첫 진료를 앞두고 인터넷으로 시험관 시술을 검색해 봤다. 그런데 검색을 하면 할수록 불안과 걱정이 더 가중됐다. 시험관 시술 고차수로 복부가 멍으로 뒤덮인 사진부터, 호르몬 주사의 영향으로 감정기복이 심해지고, 배에 복수가 찬다는 사람들을 보며 '이 일들이 내게도 닥칠 일이구나'라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났다.
매일 아침마다 배에 주사를 맞았다. 남편은 옆에서 '어떻게 맞냐'며 안절부절못했지만 정작 당사자인 나는 괜찮았다. 주삿바늘은 생각보다 무척 얇았고, 내 뱃살은 생각보다 훨씬 두툼했기 때문이다. 호르몬 주사를 맞으면 배에 복수가 찬다는 부작용 역시 난소 수치가 낮은 내게는 해당되는 사항이 아니었다. 복수가 차는 건 난소 수치가 높아 한 달에 많은 개수의 난자가 배양되는 난자 퀸들에게 주어지는 왕관의 무게 같은 거였다.
시술 1차 만에 임신에 성공했다. 우리도 놀랐지만, 주변에서도 시험관 시술 1차 만에 된 거는 로또 같은 거라며 더 놀라워했다. 시험관을 진행한 한 달 동안 인터넷에서 언급된 일은 단 한 차례도 벌어지지 않았다. 시험관 시술에 대해 자신감이 붙었다.
그런데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에 대한 벌이었을까? 나의 시험관 시술 고행은 둘째 임신을 준비하면서 찾아왔다.
첫째가 돌 무렵 됐을 때, 우리는 첫째 임신 준비 때 얼려놓은 배아가 있어 다시 병원을 찾았다. 동결 매직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던 터라 이번에도 바로 둘째가 찾아와 줄 거라고 생각했다. 한 달 내내 주사를 맞고, 약을 먹으며 자궁벽을 튼튼히 지어놨다.
그러고선 집주인을 맞이하러 병원에 갔는데 선생님의 입에서 예상치도 못한 말을 듣게 됐다. "이식할 배아가 없어서 이번에는 못 할 것 같아요", 임신이 안 되는 건 그렇다 쳐도 시도조차 못 한다는 건 우리의 예상에 없던 일이었다. 지난 2년 간 방세 내며 얼려놨던 집주인은 대체 어디 갔단 말입니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동결 배아는 이식 당일에 해동을 하기 때문에 이식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그 당일에만 알 수 있는 거였다. 단 1개 남아 있었던 우리의 동결배아는 해동해 보니 이식할 수 없는 품질이었고, 우리는 아무것도 못해보고 돌아오는 허탈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동결은 시도도 못 하고, 우린 다시 신선 1차로부터 진행했다. 이번에는 느낌이 좋았다. 배아 상태도 최상이었고, 선생님도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다고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결과는 비임신이었다.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기 때문이었을까, 배아 이식 후 조심했어야 했는데 난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지냈다. 12킬로가 넘는 큰 아이를 들고, 업으면서도 뱃속에 배아는 어련히 잘 자라줄 거라고 생각했다.
비임신이라는 사실에 선생님도 놀란듯했다. 그만큼 이번에 성공 확률이 높았다는 건데 임신이 안 됐으니, 모든 게 내 잘못인 것처럼 느껴졌다. 선생님 앞에서 지난 일에 대한 고해성사를 하듯 내 행동의 부주의로 아이가 안 온 것 같다며 자책했다. 임신에 실패해 보니 그간 번거롭게 느꼈던 배주사, 채취, 이식 등의 절차와 고통은 일도 아니었다.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일, 사실 이 감정은 내게 매우 익숙했다. 시험관 시술을 하기 전에도 매달 임신테스트기를 보며 수차례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첫째 때 임신 후 2년 간의 공백동안 그 슬픔을 잠시 잊고 살았었나 보다.
시험관 시술이라서 어려울 거는 없다. 힘든 점도 그리 크지 않다. 시험관 시술이 대단하거나 별스러울 것도 없고, 단지 임신 확률을 조금 더 높이기 위해 의학적인 도구를 활용하는 것뿐이니 말이다. 시험관 시술이 힘들다고 하는 건 자연임신으로 아이를 기다릴 때보다 더 큰 기대를 하기 때문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더 크게 느껴지니 말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따지고 보면 이 감정은 시험관 시술을 하는 사람만 해당되는 일은 아니다. 간절한 무언가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걸 두려워한다.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오늘도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하루였더라도, 그저 감정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Keep Going 하자. 우리에게 필요한 건 중간에 꺾이지 않는 마음, 바로 중꺾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