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우리 집 가훈은 <정직하게 살자>였다. 부모님을 비롯해 주위 어른들은 내게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고 했다. 어린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정직하다'의 뜻도 설명해 줬다. 정직하다는 건 거짓말하지 않고 솔직한 것이었다.
'왜 솔직하게 살아야 하냐'라고 물으니 어른들은 거짓말로 마을 사람들의 신뢰를 잃어 늑대에게 잡아먹힌 양치기소년의 이야기를 해줬다. 타인의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해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고 했다.
내게 정직하게 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그중 실제로 정직하게 사는 사람은 없었다. 부모님도 예외는 아니었다. 담배를 끊었다던 아빠는 가족의 눈을 피해 몰래 담배를 태우셨고, 엄마는 딸과의 약속을 번번이 어겼으니 말이다.
사회에 나오니 주변 어른들은 이젠 정직하게 살지 말라고 했다. 정직하게 살면 바보가 되어 도태된다며 걱정했다. '정직하다'에는 솔직하다는 뜻 외에도 원리원칙대로 하다. 순수하다. 착하다는 의미도 있었다. 어른들은 사회에 도태되지 않기 위해 적당히 편법도 쓰고, 거짓말도 해가며 자신의 실리를 챙겨야 한다고 했다.
난 정직과는 거리가 먼 어른이 됐다. 거짓말에 능한 현대판 양치기소녀였다. 어릴 땐 엄마의 꾸중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고, 학창 시절에는 선생님과 친구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사회에 나와서는 부족한 나의 스펙이 그럴듯해 보이도록 거짓된 스토리텔링을 덧붙였다.
거짓말은 중독성이 강했다. 사람들은 나의 거짓말을 믿었고, 그 말에 환호했다. 거짓말은 나를 매력적인 사람으로 보이게 했다. 그렇게 거짓말은 내 일상이 되었다. 굳이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도 습관적으로 말을 지어냈다. 어느 순간부터는 이게 거짓인지, 진실인지 스스로도 헷갈리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낮에는 태평한 표정으로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하면서도, 밤에는 거짓말이 들통나지 않을까 불안에 떨었다. 외로웠고 또 두려웠다. 내가 만들어낸 이 거짓된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대체 어떻게 멈춰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 눈물만 흘렸다.
새는 궁하면 아무거나 쪼아 먹고, 짐승은 궁하면 사람을 해치며, 사람은 궁하면 거짓말을 한다.
-공자-
나는 궁했다. 마음이 궁했고, 처지가 궁했다. 그리고 그 구멍을 거짓말로 메꾸려다가 스스로를 궁지로 몰고 있었다.
동화 속 양치기소년은 거짓말로 타인의 신뢰를 잃었고, 현대판 양치기소녀는 거짓말로 나 자신을 잃었다.
거짓과 현실의 괴리감은 나를 조금씩 갉아먹고 있었다. 거짓말하는 내 모습이 못나보였고, 스스로를 신뢰하지 못했다. 거짓말쟁이로 살았던 그 10년 동안 나의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나를 완전히 잃고 나서야 정직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았다.
우리가 정직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는 다른 무엇도 아닌 소중한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거짓말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때 나온다. 타인이 아닌 나 자신에게 집중하면 우린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다. 살기 위해, 나 자신에게 떳떳해지기 위해 거짓말을 끊었다. 그리고 누가 보든 안보든 스스로 정직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런 노력들은 내가 꽤나 괜찮은 사람이라는 확신을 준다. 자신이 좋아지는 마법, 나는 내게 최고의 나를 선물해주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