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일은 벌어졌고, 수습은 어떻게 해야 할까...?
올해 5살이 된 큰 딸은 동그랗고 큰 눈에 오똑한 코, 그리고 긴 머리에, 길쭉한 팔, 다리로 주위에서 예쁘다는 말을 정말 많이 듣고 자랐다. 어린이집 남자 친구들에게도 인기가 좋았고, 본인 스스로도 자신이 예쁜 줄 알았다. 이러한 미모에 대한 자신감은 아이가 세상을 꼬임 없이 바라보고, 밝게 자라는 양분이 됐다.
그런데 셋째를 출산하고 나니, 우리 집 긴 머리의 공주님이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엔 짧은 머리의 미소년이 앉아 있었다. 앞으로 세 아이의 육아로 바빠질 것을 우려한 남편이 엄마 몰래 첫째를 설득해 그 긴 머리를 싹둑 자른 것이다. 산후조리원에서 우연히 열어본 홈캠 속의 미소년이 우리 큰 딸이라 걸 알고 너무 놀라, 배에 꿰맨 실밥이 터지는 줄 알았다.
평소 잘 놀라지도 않고, 화도 잘 안 나는 성격인데, 그날은 상황을 확인하자마자 남편에게 바로 전화해 어떻게 된 일인지를 따져 물었다. 처음 머리를 자른 의도는 바빠질 나를 배려한 선의였고, 쇼트커트의 기장까지 짧아진 건 사고라고 했다. 처음에는 단발 기장으로 자르려고 했는데, 자르다 보니 너무 짧아졌다는 거다.
어휴, 이미 일은 벌어졌는데 이제와 화를 내봤자 뭐 하겠나 싶은 마음에 그냥 지나가기로 했다. 그저 딸아이가 짧아진 머리에 속이 상하지 않기만을 바랐다. 엄마 눈에는 머리를 짧게 잘라도 내 딸이라 그저 예쁘게만 보였다.
조리원을 퇴원하고, 3주 만에 큰 딸을 만나러 어린이집에 갔다. 평소 영상통화를 자주 해 짧아진 머리에 이미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본 딸의 짧은 머리는 생각보다 더 낯설었다. 우리 모녀가 눈물의 상봉을 하고 있을 때, 어린이집 선생님께서 조심스레 입을 여셨다. "어머님... 머리... 아셨어요?", 선생님의 눈에는 짧아진 머리에 대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가득해 보였다.
한창 멋 부리기 시작할 나이인 5살 여자 아이의 쇼트커트는 모든 이의 관심을 받았다. 별로 친하지도 않은 같은 반 어린이집 친구 엄마들까지도 내게 왜 아이 머리가 짧아졌냐고 물어오니, 점차 이 관심들이 부담되고, 싫어지기 시작했다. 딸이 걱정됐다. 그 여린 마음에 사람들의 눈빛이 상처가 되지 않을까 무서웠다.
주말에 큰 딸과 단둘이 키즈카페 데이트를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딸은 공주드레스를 입어봤다. 쇼트커트에 공주드레스가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귀여웠다. 그런데 그때 한 아이가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그건(드레스) 여자들만 입는 거야"라고 하는 거 아니겠는가? 그 말을 듣자마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혹여나 딸이 상처받을까 봐 "얘 여자거든?" 되받아치고 자리를 떠났다. 어른이 7살 아이를 상대로 유치하게 말이다. 머리카락이 짧다는 이유로 남자로 오해받는 상황까지 마주하니, 애써 괜찮은 척 다독이던 마음이 욱신거리며 요동치기 시작했다.
엄마 나 머리 짧은 거 싫어
결국 딸이 눈물을 보였다. 평소에도 머리 짧은 거 싫다는 말을 하긴 했었는데, 눈물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지금 적응하고 있는 새로운 어린이집에서 또래 친구에게 "안 예쁘다"는 말을 들은 충격 때문이었던 것 같았다. 평생 예쁘다는 말만 듣고 자란 공주였는데, 생애 처음 "안 예쁘다"는 말을 들으니 상심이 컸던 것 같다. 친구들이 모두 자기를 미워하는 것 같다고 엉엉 우는 아이의 울음에 부모의 억장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여자들의 세계도 모르고, 효율성만 따지며 딸의 머리를 잘라버린 남편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우는 아이를 꼭 안아줬다. 그러고는 우리 딸은 누가 뭐라 해도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소중한 존재라며 한참을 다독여줬다. 안 예쁘다는 친구의 말에도 "나 예쁘거든?"이렇게 당당히 되받아칠 수 있는 자존감 강한 아이로 키우고 싶었는데, 나를 닮아 주위에 쉽게 상처를 받는 것 같아 걱정이 많이 됐다.
아이들의 세계는 어른들과는 달랐다. 어른들은 각자의 개성과 스타일의 다양성을 존중하지만, 아이들의 세상에서 머리스타일은 짧거나 길거나, 두 가지밖에 없었다. 나이가 어리면 남자와 여자의 구분도 머리가 길고 짧고로 했고, 머리가 긴 아이가 어린이집 퀸카였다.
머리가 짧아서 싫다는 아이에게 웃으며 태연하게, "머리는 금방 길어~ 걱정하지 마"라며 달랬다. 그러고는 손 바삐 각종 헤어핀과 머리띠 등을 샀다. 행여나 또 남자아이라고 오해받지 않도록 말이다. 묶이지도 않는 그 짧은 머리를 내일 또 어떻게 스타일링을 해줘야 할지 고민이 됐다.
매일 조금씩 머리카락이 자라나듯, 지금 이 시기도 커가는 성장통이라고 생각하려 한다. 딸도 그리고 엄마인 나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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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커트 여자 아이 스타일링 좋은 방법 있으면 댓글로 알려주시면 감사드릴게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