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앱에는 '요즘 뜨는 브런치북'이라는 코너를 통해 매일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글을 소개한다. 글쓴이와 제목은 각기 다르지만 인기 있는 글들은 서로 비슷한 주제로 묶인다. 이혼, 배우자의 외도, 시댁과의 갈등, 투병기 등 주로 개인이 겪은 가장 아픈 상처에 대한 이야기다.
브런치에는 이런 류의 글들이 많다. 글쓰기에는 치유의 힘이 있고, 익명의 공간은 나의 가장 어두운 면을 꺼내 보일 수 있는 용기를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다른 SNS와는 달리 브런치는 자신의 가장 어두운 면을 실랄히 꺼내 보일수록 환영을 받는다.
내겐 두 개의 브런치 계정이 있다. 첫 번째 계정의 존재가 회사에 들키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두 번째 계정을 만들었다. (이 계정은 두 번째 계정이다.)
처음 브런치를 시작할 때는 나도 일상에서 겪은 힘든 일과 상처를 주로 적었다. 한 번은 회사에서 부당하게 승진에 누락된 일이 있었는데, 그 글을 올린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조회수가 10만 이상을 돌파했다. 알고 보니 내 글이 다음포털 메인에 뜨고, 관련 커뮤니티와 SNS 등에 공유가 된 것이었다.
처음에는 이런 뜨거운 반응이 좋았다. 스스로 글쓰기에 재능이 있나 보다며 우쭐했다. 그러데 구독자 목록에 회사 사람의 프로필 사진이 있는 것을 보고 '뭔가 잘 못됐구나'를 느꼈다. 10만 조회수 안에는 회사 사람들도 있었다. 그것도 꽤 많은 사람들이 말이다. 익명이었지만 글을 보고 모두 그게 나임을 유추했다.
인사팀에 불려 갔다. 글을 언급하진 않았지만, 갑자기 내게 승진에 누락된 이유를 설명했다. 인사팀도 내 글을 보았다. 하루아침에 나는 회사 내 또라이가 됐다. 수 틀리면 공개글로 저격하는 시한폭탄이 됐다.
글 안에는 나를 힘들게 했던 상사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글 속의 당사자도 그 글을 읽었다고 했다. 글을 읽고 몇 날며칠 잠도 못 자고 힘들어했다고 했다. 마음이 안 좋았다. 그분을 다치게 하려고 쓴 글이 아니었다. 하지만 의도와는 다르게 나는 글로 누군가를 가해하고 있었다.
일주일 만에 글을 내렸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내 글이 잊히길 바랐다.
이 일을 계기로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처음에는 나의 상처를 돌보기 위해 글을 썼다. 과거의 아픔과 제대로 마주할 때 회복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회복은 성장과 성숙을 동반했다. 내가 글로 치유받았던 것처럼 내 글이 누군가의 마음에도 닿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글을 읽고 누군가 잠을 못 이루고 아파한다면 그건 글이 아닌 쓰레기였다. 애정 어린 첫 번째 브런치 계정을 잃고 얻은 값비싼 깨달음이었다.
글을 쓰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글을 공개할지 말지는 또 다른 문제다. 아무리 익명의 공간이어도 내가 완성한 글은 또 다른 나였다. 그 글 끝엔 내가 감당해야 할 책임감이 따랐다. 그래서 한동안 글쓰기가 조심스러웠다. 내 글이 누군가를 상하게 하지 않을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양날의 검이라고 한다. 칼은 잘 쓰면 사람을 살리는 도구가 되지만 잘 못쓰면 사람을 죽이는 무기가 된다. 글도 마찬가지다. 글을 잘 쓰면 자신의 상처를 회복하는 데 도움을 주는 의료용 메스가 되지만, 글을 잘 못쓰면 다른 누군가를 다치게 하는 흉기가 된다.
날카롭고 정교하면서도 뭉툭한 글을 쓰고 싶다. 어느 누구도 다치지 않고, 나의 상처만 쓱하고 도려낼 수 있는 글쓰기 명의가 되기를 꿈꾼다. 아무래도 오랜 연습이 더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