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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연 Oct 14. 2023

당신의 그늘을 지워드립니다

그늘을 지우는 건 해가 아닌 구름이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들이 있다. 매사에 꼬임이 없고, 밝고 긍정적인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온실 속 화초처럼 좌절 한 번 겪어보지 않고, 부모에게 넘치는 사랑만 받고 자랐을 것 같아 '그늘 없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그늘이 없어 보인다'는 말은 그 사람의 뿌리인 자존감의 생김새를 칭찬하는 말처럼 들린다.

'그늘 없어 보인다의' 속뜻은 이런 게 아닐까?


내 입으로 말하기 쑥스럽지만 주위에서 종종 그늘이 없어 보인다는 얘기를 듣곤 한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아니에요'라고 말은 하지만, 입꼬리는 절로 올라간다. 참 주책이다.


지금은 주위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됐지만,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사내왕따를 당하던 어둡고 우울한 사람이었다. 부모님에게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다는 결핍에 사로잡혀 매사에 자신감도 없고, 항상 위축되어 있었다. 어디에서도 마음 둘 곳이 없었고, 스스로도 존재가치가 없다고 여겼다. 자존감이 바닥을 뚫고 지하까지 내려와 있었다.


그늘의 길이는 자존감의 크기와 반비례했다. 자존감이 낮으면 그늘은 길어졌지만 자존감이 높은 사람에게는 그늘이 보이지 않았다. 당시 나의 그늘은 자신을 집어삼킬 정도로 어둡고, 깊었다.


그늘을 지우는데 10년이 걸렸다. 뼈를 깎는 고통이었다. 먼저 자존감을 갉아먹는 주위 환경과 헤어졌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고, 결혼을 하며 나르시시스트 부모님에게서도 벗어났다. 그리고는 자존감이 단단한 남편 옆에서 다시 자존감의 뿌리를 내렸다.


힘들었던 과거와도 제대로 마주했다. 혼자서는 힘들었기에 전문가의 도움도 받았고, 나의 상처를 객관적으로 보기 위한 글도 썼다.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노력 끝에 마주한 진실은 나는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사랑받을만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변화는 내가 나를 사랑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스스로 당당해지니 타인의 시선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과거의 아픔은 성장을 위한 시련이었고, 이를 극복하니 나는 전보다 훨씬 아름답고 성숙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게 된 후에야 내게 드리워졌던 그늘은 사라졌다.




사람들은 자신의 그늘을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 애써 밝은 척 노력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속은 더 곪아가고, 그늘은 더 깊어진다. 그늘은 그 자체로 인정하고 포용할 때 비로소 지울 수 있다.


그늘을 지우는 건 해가 아닌 구름이다


그늘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나무 그늘은 사람들에게 쉼을 선물하고, 인생의 그늘은 사람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과거의 아픔으로 그늘이 생겼다면, 그 아픔을 외면하기보다는 그 속으로 들어가 보자. 그늘 속에서 조용히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보자. 상처를 제대로 마주할 때 우리는 진정한 회복을 경험한다. 그리고 아픔과 상처를 인정하고 포용할 때 비로소 인격적인 성장과 성숙을 할 수 있다.


그늘을 지우는 건 해가 아니라 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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