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하원 직전 어린이집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담임선생님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장난감을 사이에 두고 아이들 간 다툼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내 아이가 친구 얼굴을 할퀴어 상처를 냈다는 연락이었다.
"네?"
어린이집을 다닌 지 꽤 됐는데 이런 일은 처음이라 듣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어린이집에서는 이런 일은 아이들 사이에서 늘 있는 일이라 했지만, 이를 처음 겪는 부모 입장에서는 마치 학폭위가 열리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친구 얼굴에 난 상처 사진을 보내왔다. 뺨에 4~5cm 정도 길이의 손톱으로 긁은 상처 선명히 보였다. 친구 어머니께서는 아이들끼리 그럴 수도 있다며 괜찮다고 했지만 그럼에도 제대로 사과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어린이집에 친구 어머니의 연락처를 물었다.
친구를 다치게 한 가해 아동의 부모로서 피해 아동의 부모에게 제대로 사과를 하고, 이에 맞는 적절한 배상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남편은 이게 왜 우리 책임이냐고 되물었다.
우리 책임이 아니면... 누구 책임이야?
남편은 어린이집 보육시간 중 발생한 사건이니, 관리감독 소홀의 어린이집 책임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제 3살 된 아이가 뭘 알고 친구를 다치게 했겠냐며 책임능력 없는 우리 아이 역시 피해자라고 했다.
관련된 법적 근거를 찾아보니 정말 남편 말이 맞았다.
1) 민법 제755조(감독자의 책임) -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낸 경우라면 등원~하원 때까지의 아이 관리감독 책임은 어린이집에 있다.
2) 민법 제750조(불법행위의 내용) - 보육시간 중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는 어린이집에 과실책임이 따르며, 피해를 배상해 줄 책임도 따른다.
남편은 어린이집에서 CCTV를 확인하자고 했다. 담임 선생님 부재중 발생한 사고였고, 우리 아이가 때렸다고는 하는데 이를 직접 본 것도 아니니 정확한 내용 파악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어린이집은 이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때린 아이 부모가 CCTV 열람 요청한 적은 처음이네요"라며 당황해했다.
때린 아이 부모는 움츠려든다. 처음 이 사실을 접하면 친구를 때린 내 아이 탓을 한다.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도,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할 수도 없는 3살 아이에게 왜 그랬냐고 한다. 그리고 피해 아동 부모에게 고개 숙이게 된 이 상황을 부끄러워한다.
처음에는 그게 아이를 위한 거라고 생각했다. 일이 커지지 않도록 조용히 사과하고 '좋게 좋게'라는 말로 빨리 사건을 덮고 싶었다. 그래야 내 아이가 선생님에게 밉보이지도 않고, 친구들과도 다시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행동의 이면에는 '아이'는 없고 '부모인 나의 대외적 이미지'만 있었다. 아이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책임여부를 확인해 보려는 노력도 없이 난 너무도 쉽게 내 아이를 친구를 때린 나쁜 아이로 여기고 있었다.
어쩌면 내 아이에게 가해자 프레임을 씌우는 건 부모인 나였던 거 같다.
어린이집에서 발생한 사고의 책임은 전적으로 어린이집에 있다. 그러니 사과를 하더라도 어린이집에서 하면 된다. 가정에서는 아이에게 친구를 때리는 건 잘 못된 일이라는 걸 알려주고, 주기적으로 손톱 정리를 해주는 것이다.
남편은 어린이집에 밉보이면 안 다니면 그만이라고 했다. 그런데 책임소재를 따져보지도 않고, 선생님 말만 듣고 사건을 빨리 무마시키려는 내 모습을 보며 '엄마가 이렇게 유약하면 아이가 어떻게 엄마를 믿을 수 있냐'라고 했다. 남편은 아이에게 초점을 맞추고 이번 일을 다루고 있었다.
남편의 말에 정곡을 찔린 듯 부끄러웠다. 엄마가 전부인 내 아이에게 미안해서 눈물이 나올 뻔했다.
이번 일로 느낀 게 많다. 물러터진 엄마가 아닌 아이를 지킬 수 있는 단단함을 갖추는 것. 그렇게 오늘도 난 부모로서 여물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