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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연 Oct 25. 2023

어린이집에서 친구와의 다툼, 누구의 책임일까?

부모 잘못일까, 관리감독 소홀의 어린이집 잘못일까.

어머님, 오늘 OO이가 놀이 중에 친구를 할퀴어서 친구 얼굴에 상처가 났어요

아이의 하원 직전 어린이집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담임선생님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장난감을 사이에 두고 아이들 간 다툼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내 아이가 친구 얼굴을 할퀴어 상처를 냈다는 연락이었다.


"네?"


어린이집을 다닌 지 꽤 됐는데 이런 일은 처음이라 듣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어린이집에서는 이런 일은 아이들 사이에서 늘 있는 일이라 했지만, 이를 처음 겪는 부모 입장에서는 마치 학폭위가 열리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친구 얼굴에 난 상처 사진을 보내왔다. 뺨에 4~5cm 정도 길이의 손톱으로 긁은 상처 선명히 보였다. 친구 어머니께서는 아이들끼리 그럴 수도 있다며 괜찮다고 했지만 그럼에도 제대로 사과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어린이집에 친구 어머니의 연락처를 물었다.


친구를 다치게 한 가해 아동의 부모로서 피해 아동의 부모에게 제대로 사과를 하고, 이에 맞는 적절한 배상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남편은 이게 왜 우리 책임이냐고 되물었다.


우리 책임이 아니면... 누구 책임이야?




남편은 어린이집 보육시간 중 발생한 사건이니, 관리감독 소홀의 어린이집 책임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제 3살 된 아이가 뭘 알고 친구를 다치게 했겠냐며 책임능력 없는 우리 아이 역시 피해자라고 했다.


관련된 법적 근거를 찾아보니 정말 남편 말이 맞았다.


1) 민법 제755조(감독자의 책임) -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낸 경우라면 등원~하원 때까지의 아이 관리감독 책임은 어린이집에 있다.
2) 민법 제750조(불법행위의 내용) - 보육시간 중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는 어린이집에 과실책임이 따르며, 피해를 배상해 줄 책임도 따른다.





남편은 어린이집에서 CCTV를 확인하자고 했다. 담임 선생님 부재중 발생한 사고였고, 우리 아이가 때렸다고는 하는데 이를 직접 본 것도 아니니 정확한 내용 파악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어린이집은 이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때린 아이 부모가 CCTV 열람 요청한 적은 처음이네요"라며 당황해했다.   


때린 아이 부모는 움츠려든다. 처음 이 사실을 접하면 친구를 때린 내 아이 탓을 한다.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도,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할 수도 없는 3살 아이에게 왜 그랬냐고 한다. 그리고 피해 아동 부모에게 고개 숙이게 된 이 상황을 부끄러워한다.


처음에는 그게 아이를 위한 거라고 생각했다. 일이 커지지 않도록 조용히 사과하고 '좋게 좋게'라는 말로 빨리 사건을 덮고 싶었다. 그래야 내 아이가 선생님에게 밉보이지도 않고, 친구들과도 다시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행동의 이면에는 '아이'는 없고 '부모인 나의 대외적 이미지'만 있었다. 아이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책임여부를 확인해 보려는 노력도 없이 난 너무도 쉽게 내 아이를 친구를 때린 나쁜 아이로 여기고 있었다.


어쩌면 내 아이에게 가해자 프레임을 씌우는 건 부모인 나였던 거 같다.




어린이집에서 발생한 사고의 책임은 전적으로 어린이집에 있다. 그러니 사과를 하더라도 어린이집에서 하면 된다. 가정에서는 아이에게 친구를 때리는 건 잘 못된 일이라는 걸 알려주고, 주기적으로 손톱 정리를 해주는 것이다.


남편은 어린이집에 밉보이면 안 다니면 그만이라고 했다. 그런데 책임소재를 따져보지도 않고, 선생님 말만 듣고 사건을 빨리 무마시키려는 내 모습을 보며 '엄마가 이렇게 유약하면 아이가 어떻게 엄마를 믿을 수 있냐'라고 했다. 남편은 아이에게 초점을 맞추고 이번 일을 다루고 있었다.


남편의 말에 정곡을 찔린 듯 부끄러웠다. 엄마가 전부인 내 아이에게 미안해서 눈물이 나올 뻔했다.

 

이번 일로 느낀 게 많다. 물러터진 엄마가 아닌 아이를 지킬 수 있는 단단함을 갖추는 것. 그렇게 오늘도 난 부모로서 여물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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