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때는 혹여나 나의 부주의로 아이가 잘 못될까 봐 행동거지 하나하나 조심했다. 무거운 것도 들지 않고, 카페인이 있으니 커피도 마시지 않았다. 영양제도 꼬박꼬박 잘 챙겨 먹었고, 몸이 조금만 이상해도 곧장 병원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둘째를 임신했을 때는 내가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종종 까먹곤 했었다. 회사에서도 전과 똑같이 일했고, 집에서도 12킬로 된 큰아이를 안고, 업으며 육아를 했다. 영양제는 깜빡하면서, 커피는 마시고 싶으면 마셨다. 태교에 신경 썼던 첫째와는 달리 둘째의 태교는 큰아이의 육아였다.
많이 신경을 못썼음에도 둘째는 배 속에서부터 큰 이슈없이 잘 자라줬다. 첫째 때보다 태동도 활발했다. 알아서 건강히 잘 자라주는 게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조심성 있게 행동하지 않아도 배 속에 아기는 알아서 잘 자라는구나'싶었다.
둘째는 생후 40일 만에 8시간 통잠을 잤다. 특별히 수면교육을 한 것도 아니었다. 역류방지쿠션에 눕혀 쪽쪽이를 물려주면 곧 잠을 잤다. 성격도 순해서 크게 우는 법도 없었다. 혼자서도 잘 놀고, 잘 웃었다. 사람들은 이렇게 순한 아이는 처음이라며 '인생 2회 차 아기'라고 놀라워했다.
처음에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면 너무 힘들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둘째가 순한 탓에 육아가 어렵지 않았다. '삼신할매가 둘을 키울 수 있도록 알아서 점지해 주는구나' 싶었다. 둘째는 알아서 큰다는 선배들의 말이 이해가 됐다.
둘째 육아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틀 전 나는 둘째를 안고 대학병원 응급실에 갔다.
둘째가 얼마 전부터 잘 먹지를 못하고 4일 내내 분수토를 했기 때문이다. 혹시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 싶어 동네 소아과에 가니 의사 선생님은 위문협착증이 의심된다며 대학병원 진료를 권했다. 진료의뢰서까지 작성해 주셨다.
소아응급실은 첫째 때 이후 이번이 두 번째였다. 끊임없는 대기시간과 아파서 목 터져라 우는 아이들이 있는 곳, 부모에게 지옥을 보여준다면 이런 풍경이 아닐까 싶었다.
5킬로도 안 되는 작은 아이를 보며 지나가는 사람마다 몇 개월 됐냐고 물었다. 어쩌다 이렇게 작은 아기가 응급실까지 오게 됐냐며 궁금해했다. 2개월 됐다는 말에 다들 말을 잃고, 안타까워했다.
X-ray를 찍고, 5시간을 기다려 초음파도 찍었다. 그리고 작은 손등에 바늘을 꽂고 채혈을 했다. 긴 공복시간으로 탈수가 올까 링거도 맞혔다. 배고파서 우는 아기를 공갈젖꼭지로 겨우겨우 달래며 재웠다.
다행히 결과는 정상이었다. 분수토의 이유는 한 번에 많은 양의 분유를 먹어서였다. 몸에 이상이 있지 않다는 말에 긴장이 풀렸다. 정말 다행이었다.
선생님은 아기가 체구가 작아 아직 한 번에 분유 100ml를 먹기 힘들 수 있으니, 80ml씩 7번 나눠서 먹여보라고 하셨다. 위장약과 유산균도 챙겨주셨다.
어른도 버티기 힘든 그 긴 시간을 잘 버텨준 둘째가 짠하고 고마웠다. 그리고 태어난 지 2개월 만에 위장약까지 먹게 해 미안했다.
잘 먹고, 잘 크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10ml, 20ml 더 먹이려고 했던 게 오히려 아이에게 독이 됐다. 육아 경력자라는 자만에 빠져 난 내 욕심으로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첫째를 키워봤으니 둘째는 더 잘 키울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난 초산모보다도 못한 경산모였다. 첫째랑 비교하며 조급해했다. 첫째와 둘째는 한 배에 나왔어도 엄연히 다른 아이였다.
난 엄마 인생 2회 차가 아니라 '둘째 아이 엄마 1회 차'였다. 겸손한 마음으로 다시 공부해야겠다. 둘째 아이의 작은 발에 맞춰 보폭을 좁혀서 걸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