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에도 속도 조절이 필요해
현재 29개월, 4개월 두 딸을 키우고 있다. 살림과 육아만으로도 하루가 바삐 지나가지만, 귀한 육아휴직 기간 동안 아이만 키우고 싶지는 않아 주 2회 운동도 하고, 매일 책도 읽고, 주 1회 이상 브런치에 글을 올리며 나도 함께 키우고 있다.
아이들한테 미안한 엄마가 되고 싶지도 않고, 아이 때문에 꿈을 포기했다며 억울해하는 엄마가 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아이들을 볼 때는 아이들에게 최대한 집중하고, 아이들을 다 재운 밤 12시부터는 나만의 시간을 가졌다.
하루 수면시간이 4시간도 안 되는 날이 지속됐지만 괜찮았다. 아니, 오히려 조금 흥분됐다. 엄마지만 자기 계발도 열심히 하는 스스로의 모습에 취해 있었다. 그리고 내 열정을 받쳐주는 체력이 있음에 감사했다.
그런데 새해가 오기 며칠 전부터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나이가 한 살 더 먹어서일까? 아니면 그동안 못 잔 잠의 후폭풍 때문일까? 일 년 내내 감기 한 번 안 걸렸었는데, 지난 2주 동안 병원만 3번을 넘게 다녀왔다. 수액치료도 2번이나 받았다.
몸이 아프기 시작하니 견고했던 일상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내 몸과 마음처럼 집도 지저분해졌다. 잠은 자도 자도 계속 졸렸고, 몸은 어디 맞은 것처럼 욱신거렸다.
'다정함은 체력에서 나온다'라고 하던데 정말 그 말이 맞았다. 나는 그동안 모태 다정한 엄마가 아닌, 그저 체력이 남들보다 좋아서 다정했던 엄마였다. 체력이 바닥이 나니, 아이의 장난도, 반찬투정도 받아줄 여유가 없었다.
엄마와 놀자고 장난치던 아이를 순간적으로 정색하고 바라봤다. 엄마의 그런 무서운 표정은 처음이라 아이도 당황했고, 내 반응에 나도 소스라치게 놀랐다. 놀아줄 힘이 없어 그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TV를 틀어줬다. 그리고 아이가 만화를 보는 동안 나는 내 방에서 누워 잠을 잤다. 침대 위에는 온갖 육아서가 정리도 안된 채 널브러져 있었다.
새해 버프를 받아야 할 때, 난 번아웃이 왔다.
어디 좀 나가서 놀다가 와~
나의 지친 마음을 알고, 남편이 먼저 자유부인 시간을 제안해 줬다. 그리고 그 길로 목욕탕에 갔다. 때를 한 꺼풀 벗기고 오면 엉망진창인 몸과 마음도 조금 깨끗이 정리가 될 것 같았다.
예상이 맞았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때를 깨끗이 밀고 나오니 기분이 좋았다. 상쾌하고, 개운했다. 봉지 커피우유를 마시며 병원에 들러 약을 사고, 오는 길에 남편과 함께 먹을 돈가스도 포장해 왔다.
열정에도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갑자기 하고 싶은 마음이 훅~ 들어온다면 속도를 늦추고, 비상깜빡이를 켜야 한다.
적당한 열정은 삶이 즐거워지는 활력소가 되지만, 과다한 열정은 자신을 다 태워버리게 하는 독이 된다. 영감도, 즐거움도 다 좋지만 체력 관리가 최우선이다. 역시 아파봐야 건강의 중요성을 다시 깨닫는다.
엇, 다시 몸이 편안해지니 머릿속에 온갖 영감 거리가 떠오른다.
워워~ 오늘은 이만 들어가서 자자, 이놈의 영감탱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