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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연 Feb 26. 2024

다시 쓰는 육아휴직 계획서(진짜진짜 최종 ver)

내겐 아직 10개월이 남아있다.

강주임, 순산하고 건강하게 돌아와


마지막 출근 날, 많은 사람의 환송을 받으며 회사를 나왔다. 내일부터는 기대하고 고대하던 육아휴직 시작이었다.


"아이가 둘이면, 하나일 때랑 차원이 다르게 힘들어"


"첫째 때 산후 우울증 왔었다고? 걱정 마, 아이 둘 키우면 우울증 걸릴 세가 없어"


두 아이를 먼저 키워본 선배 맘들은 내 팔목을 붙들고 앞으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라고 일러줬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 말들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 출산과 육아에 대한 걱정보다 휴직을 한다는 기대감이 훨씬 컸으니 말이다.


휴직하면 아이뿐만 아니라, 나도 함께 키워야지


휴직 시작 3개월 전부터 휴직 계획만 수십 번을 세웠다. 방학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생활기록표도 세워보고, 유튜브에서 계획을 잘 세우고, 실천하는 방법에 대한 영상도 수십 번 봤다. 프로 작심삼일러였지만 이번에는 반드시 성공하고 싶었다.


- 주 1회 브런치에 글 쓰고, 크리에이터 베지를 받기

- 주 1회 유튜브 영상 업로드 하고, 구독자 1천 명 모으기

- 주 1회 책 한 권 읽고 블로그에 서평 하기, 도서 인플루언서 도전하기


육아휴직의 본 취지와는 달리 나의 마음은 콩밭에 가있었다. 계획서에는 온통 아이를 키우는 육아(兒)가 아닌 나를 키우는 육아(我)에 대한 내용뿐이었다.


위 계획이 얼마나 현실성이 없는지는 아이를 낳고, 5개월 만에 깨달았다.




무슨 휴직자가 이렇게 조급해?


새벽까지 방에 불을 켜놓고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으면 남편은 무슨 휴직자가 이렇게 조급하게 사냐고 했다. 피곤하다면서 쉬지도 않고, 자신을 극한으로 몰아넣는 내가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피로누적입니다.


"피로누적이요?" 최근 뒷골이 땅기고, 일상생활을 하기 힘들 정도로 목과 어깨가 아팠다. 그래서 한의원에 가니 피로누적 때문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우스웠다. 일도 안 다니는 휴직자가 피로누적이라니,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옛말 틀린 거 하나 없었다.


육아와 살림, 그리고 자기 계발까지 하고 싶은 게 많은 하고잡이 엄마라 처음에는 잠만 줄이면 다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잠을 줄인다는 것은 모든 걸 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은 거였다.


수면 부족과 바닥난 체력으로 머리는 무거웠고, 작은 움직임도 버거웠다. 마음과 달리 하루의 계획을 다 완수하지 못하는 날들이 많아지니 우울감도 들었다. 마음이 먼저인지, 몸이 먼저인지 모를 정도로 몸과 마음 모두 지쳐있었다.  




뭔가 잘 못 된 거 같아


1월 20일, 첫 브런치북 <부자가 되는 결혼, 가난해지는 결혼> 브런치북 연재를 마치고 휴지기에 들어갔다. 좀 쉬면서 건강도 회복하고, 살림도 살필 생각이었다. 그러면서 비현실적인 휴직계획서를 다시 손 봤다.


종이를 펼쳤다. 그리고 24개의 칸을 그리고 고정 스케줄을 표시했다. 7시부터 9시까지는 첫째 아이 등원 준비, 9시부터 4시까지는 둘째 케어, 그리고 4시부터 밤 10시까지는 두 아이를 돌봐야 했다. 둘째가 낮잠을 자는 시간에는 살림과 첫째 아이 저녁을 준비해야 하니, 내가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은 아이가 잠든 후 2시간 남짓이었다.


하루 2시간밖에 없는 사람이 24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사람처럼 계획을 세웠으니, 계획을 지키지 못하는 건 당연한 거였다. 그래서 계획을 아니, 욕심을 줄였다.


육아와 살림만 제대로 해도 엄청 대단한 거야


남편의 이 한 마디에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어쩌면 나는 모든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만 특별하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가까운 사이에서 소중함을 쉽게 잊듯, 내겐 살림과 육아가 너무 일상적인 일이라 그 중요성을 간과했던 것 같다. 빨리 아이들을 재우고 콘텐츠를 만들 생각에만 급급했고, 아이를 재우다 함께 잠드는 날에는 자책하며 스스로를 다그쳤다.  


내 병은 내가 키우고 있었다. 몸도 망가졌고, 집도 엉망이었다. 가정이 엉망진창인데, 그 위에 내 꿈이 꽃피울 리 만무했다. 엄마의 꿈은 건강한 가정 위에서 꽃 피울 수 있었다.


엄마가 건강해야, 가정이 바로 서고, 가정이 바로 서야 엄마의 꿈이 꽃피운다.


건강, 육아, 살림


노트북을 펼치고, 위 세 단어를 적었다. 그리고 앞으로 남은 10개월 동안 위 세 가지에 집중하기로 했다. 구체적인 액션 플랜은 아래와 같다.


- 건강 : 매일 7시간 이상 자기, 주 2회 근력 운동하기

- 육아 : 아이와 함께 있을 땐 아이에게 집중하기, 아이들 식단 신경 쓰기

- 살림 : 미니멀라이프로 살기, 살림 루틴 만들기

- 매일 2시간, 나만의 시간 갖기 (1시간 글쓰기, 20분 독서, 일기 쓰기 등)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지만, 복직하기 전까지 하나하나 배워보려 한다. 그리고 매일 한 시간씩 시간을 내여 이를 기록해 보기로 했다.


계획을 세우다 보니 꿈을 이루는 과정이 마치 초등학교 체육대회때 했던 '박 터트리기'와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이 터질까?' 의심하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의 몸보다 훨씬 큰 박을 향해 공을 던지다 보면 어느 순간 꽃 종이와 흩날리며 펑하고 터지는 것처럼, 우리의 꿈들도 지금 보기에는 막연히 높고 커 보이지만, 매일 작은 공을 던지는 행위에 집중하다 보면 언젠가 펑하고 터지는 날도 오니 말이다.


그래서, 결론은 혼자 데드라인을 정해놓고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지금 눈앞에 놓인 일을 하나하나 해나가기로 했다. 그것만 해도 충분하다고 나를 격려하며 말이다.


복직까지 앞으로 10개월, 총 306일 동안 306개의 공을 던지다 보면 박이 터지진 않더라도, 금이라도 가지 않겠는가. ;-)




알람 소리에 설렜는데, 글 발행 안내였구나^^;


휴지기는 이제 끝, 앞으로 브런치로 자주 얼굴 비출게요!


발행 안내 알람 싫어요~ 구독자 늘고, 좋아요, 댓글 알람 좋아요~^^


이제 곧 3월, 각자 마음속에 품고 있는 박이 예쁜 꽃가루와 함께 펑하고 터지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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