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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연 Nov 07. 2023

25살, 부모 도움 없이 결혼하기로 하다

1억으로 결혼 준비하기 프로젝트


회사 경조사 게시판에 막내 사원의 결혼 공지가 뜨자 한동안 부서가 떠들썩했다. 그도 그럴 것이 25살의 막내가 언니들 다 제치고 고작 5개월 만난 남자랑 결혼한다고 하니 다들 깜짝 놀랐던 것 같다.


너무 성급한 거 아니냐며, 아직 발견하지 못한 하자가 있을 수도 있으니 조금 더 만나 보라는 당부 아닌 당부도 듣고, 결혼을 서두르는 다른 이유가 있는 거 아니냐는 의심 어린 눈초리를 받기도 했다. 회사 상무님은 나를 따로 불러 예비 신랑의 호구조사까지 했다.


하지만 주변의 걱정과는 달리 난 내 선택에 확신이 있었다. 이보다 더 괜찮은 신랑감은 찾지 못할 것 같았다. 당시 28살이었던 남편은 나와 세 번째 만나는 날 "결혼을 전제로 만나고 싶다"며 고백했다.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해 모아둔 돈도 6천만 원 된다"며 자신이 준비된 신랑감임을 어필했다. 


6천만 원은 현재 평균 결혼 준비 자금인 3억 3천만 원에 한참 못 미치는 금액이지만, 돈을 헤프게 쓰지 않고, 착실히 돈을 모으는 경제관념이 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호감형 외모와 똑 부러지는 경제관념, 그리고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모습까지. 결혼을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사람은 사계절은 다 겪어봐야 안다지만, 우리는 5개월로도 충분했다. 이 사람과 함께라면 옥탑방이라도 괜찮을 것 같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25살이라 가능했던 결정이었던 것도 같다. 그렇게 우리는 조건보다는 사랑이 전부인 25, 28살에 결혼을 했다. 




결혼을 준비하며 내가 그동안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혼은 현실이었고, 그 벽은 생각보다 꽤 높았다. 식장과 집, 혼수, 스드메 모든 게 다 돈이었다. 


원하는 건 가격이 너무 비쌌고, 가격에 맞추면 성에 차지 않았다. 기대와 실망의 반복이었다. 하지만 부모님께 손을 벌리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키워준 것도 고마운데, 결혼한다고 부모님의 노후자금까지 저당 잡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남들보다 작게 시작하더라도 우리의 힘으로 준비해 보기로 했다. 먼저 남편과 돈을 합쳤다. 우리에게는 총 1억 원의 총알이 있었다.


1억 원이 있으면 세상에 원하는 건 뭐든지 다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1억 원은 25살의 눈에나 큰돈이지 현실에서는 턱없이 작은 돈이었다. 당시 서울에서 1억으로는 원룸밖에 살 곳이 없었다.  


결혼 준비는 선택과 결정의 연속이었다. 1억의 현실적 가치를 깨달은 후, 대출을 받아서 괜찮은 아파트 전세로 갈까도 생각했었다. 자금이 2억만 돼도 선택지가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2억이면 여의도 시범아파트 18평 전세로 들어갈 수 있었고, 부천의 신축 아파트 25평 전세도 가능했다.


하지만 일단 최대한 우리 예산에 맞춰서 집을 알아보기로 했다. 부동산의 ㅂ도 모르는데 섣불리 대출을 받아 움직이지 않기로 했다. 총알은 나중을 위해 아끼기로 했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인천 연수구에 위치한 25평의 A아파트에서 신혼을 시작했다. 전세금 1억 3천만 원이었다. 비록 출퇴근 시간이 왕복 3시간이나 걸렸지만, 우리 예산을 많이 초과하지 않는 깨끗하고 조용한 집이었다. 


집만 해결됐는데 이미 예산 초과였다. 결혼을 하면 명품백이나 시계를 예물로 받는다는데, 우리는 양가 부모님께서 주신 예물비 1천5백만 원도 모두 집에 투자했다. 최신형 가전, 가구를 살 여력은 더더욱 없었다. 


웬만한 가전, 가구는 각자 집에서 쓰던 걸 가져왔다. 남편은 자기 방에 있던 TV를 떼어왔고, 난 중학생 때부터 써왔던 책장과 책상을 가져왔다. 식기류는 인터넷 최저가로 구입했고, 그 외 물건들은 다이소에서 구입했다. 우리가 산 건 침대와 소파, 옷장, 밥통, 청소기 정도였다. 


잡지책에서 나올법한 신혼집처럼 다 갖추고 시작한 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행복했다. 우리 스스로 함께 살 집을 알아보고, 결혼식을 올렸다는 게 대견했다. 작은 성공의 경험이 쌓여 큰 성공을 하듯 지금은 비록 인천에 위치한 30여 년 된 아파트 전세로 살고 있지만, 나중에는 수영장 딸린 신축 아파트에서 살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1년 뒤, 우리는 정말 수영장이 딸린 송도의 한 신축아파트 분양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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