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혼사유 3위가 장서갈등이라고 한다. 10집 중 3집이 장서갈등을 겪고 있으며, 요즘은 그 빈도가 고부갈등보다도 많다고 한다. 장서갈등을 겪고 있는 집은 주변에서 찾기도 쉽다. 우리 집도 그중 하나였다. 그것도 정도가 심한 갈등 말이다.
장서갈등이 진행 중일 때 주변에서는 중간에 낀 나의 포지션을 궁금해했다. 이게 만약 고부갈등의 상황이었다면 부인 편을 들지 않는 남편을 천하의 몹쓸 놈이라고 손가락질했을 텐데, 장서갈등에서는 엄마의 편을 들지 않는 딸이 나쁜 X였다.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가 갖고 있는 친밀감(?), 유대감(?) 때문인지 고부갈등과 달리 장서갈등에는 남편과 아내가 없었다.
고부갈등 : 아내, 남편, 시어머니 / 장서갈등 : 엄마, 딸, 사위
부모님은 남편 편을 드는 나를 괘씸해했다. 사위는 그렇다 치더라도 내 딸이 엄마 편을 들지 않았다는 것에 무척 섭섭해하셨다. "너는 네 엄마가 사위한테 가족 취급도 못 받고 있는데, 시댁에 가서 희희낙락하고 싶니? 최소한 너도 시댁에 똑같이 가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니니?"라며 엄마는 내가 엄마 편에 서서 남편과 싸우길 바라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는 엄마 나름 애도의 과정을 거치고 있는 중이었다. 엄마의 울분 섞인 슬픈 감정들이 당시 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엄마의 말대로 내 부모는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나는 시댁에 가서 웃고 있는 게 맞나 싶기도 했다. 그날 이후 친정에 가면 이혼녀, 시댁에 가면 이방인 느낌이 들어 스스로가 처연하게 느껴졌다. 날 사랑한다면서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남편과 부모님이 자기중심적인 것 같아 원망스러운 날도 많았다.
그러고는 앞으로 남편과 부모님이 서로 안 보고 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생각해 봤다. '날 좋아해 주시는 시부모님이 장서갈등의 내막을 알고, 날 미워하면 어떡하지?', '애들 데리고 혼자 친정에 가면 주변에서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아이들한테 뭐라고 설명하지?' 등 내 머릿속에는 온통 내 안위에 대한 걱정만 있었다. 어쩌면 가장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나였을지도 모르겠다.
우린 각자의 자리에서 꽤 오랫동안 애도의 시간을 보냈다. 엄마는 엄마 나름대로, 남편도 남편 나름대로, 그리고 나도 나 나름대로 이 상실을 애도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참 많은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으려 노력했다.
'남편이 우리 부모님을 안 보니 나도 시부모님을 안 보는 게 맞는 건가?'생각해 봤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엄마와 남편 사이와는 별개로 시부모님과 나는 별도의 인간관계였다. 내게 며느리 그 이상으로 잘해주시는 고마운 분들에게 제3의 이유로 상처를 드리고 싶지 않았다.
남편과 내 사이도 마찬가지였다. 흔히 결혼을 가정과 가정의 결합이라고는 하나, 사실 결혼의 중심은 남과 여 두 사람이다. 우리는 상대를 보고 결혼을 결심하지, 그 부모를 보고 결혼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배우자가 내 부모님과 화목하게 지낸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부모의 존재가 부부 사이를 힘들게 한다면 부모와는 거리를 두고 가정의 평화를 지키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장서갈등, 고부갈등이 이혼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대부분 A관계가 B관계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네 부모가 나를 힘들게 하니 그 자식인 네가 밉고, 내 부모를 미워하니 나도 똑같이 네 부모를 존중하지 않을 거야'라는 마음은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 가서 눈 흘기는 것과 다를 게 없다.
흔히 부모와 자신을 동일시 생각하는 사람들은 배우자가 내 부모를 언짢게 하면 이를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장모-사위, 시부모-며느리는 나와 남편의 결혼으로 인해 생겨난 각각의 인간관계다. 마음이 잘 맞는 사람과 가까이 지내고, 그렇지 않은 사람과는 거리를 두는 것처럼, 나는 시부모님과 마음이 잘 맞아 가까이 지내는 거고, 남편은 우리 부모님과 잘 맞지 않아 거리를 두는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장서, 고부관계는 참 이상하다. 가족관계증명서에서는 표시되어 있지 않는,배우자를 통해서야만 만날 수 있는 먼 가족이면서도 그 누구보다부부 사이에 깊숙이 개입되어 있는가까운관계기도 하기 때문이다.
처음 장서갈등이 발생했을 때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당시에는 특정 상황 때문에, 서로 다른 성향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돌이켜 보면 이 모든 건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가족 문화 차이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화차이는 국제결혼의 상황에서만 있는 게 아니다. 토종 한국인끼리 결혼한다고 하더라도 그동안 살아온 환경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원 가족에게는 '아'라고 통하던 말이 상대에게는 '어'로 들릴 수 있었다. 관계가 멀어지는 건 엄청 큰 사건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그동안 치부시해 왔던 작은 오해가 만든 관계의 균열 때문이었다.
이미 때늦은 후회지만, 만약 우리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다는 것을 인지하고 서로의 다름을 천천히 이해해 가는 시간을 가졌다면 지금과는 다른 모습의 마음으로 맺은 진정한 가족이 되지 않았을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애도의 끝은 상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용'단계다. '남편과 부모님 사이는 끝났다. 하지만 이에 영향받지 않고, 부모님과 나, 나와 남편, 시부모님과 내 사이는 여전히 좋다'라고 생각하며, 부모님과 남편의 관계를 놓아버리고 나니 그제야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다.어쩌면 나는 그동안 말로만 장서관계가 끝났다고 했지, 실제 마음속으로는 둘 사이를 놓지 못하고 있었나 보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한다. 꽤 오랜 시간 날 밤잠을 빼앗아가고, 날 마음속 가장 깊은 곳으로 가라앉혔던 '장서갈등'이 이제와 보니 부모님께 정서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줬다. 예전이라면 엄마 말에 찍소리도 못하고 울며 순응만 한 어른아이가 이번 일을 계기로 처음으로 엄마에게 소리도 내보고, 내 가족을 지키려 노력도 하며 진짜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엄마는 내게 변했다며 서운해하셨지만, 난 지금 이런 내 모습이 꽤 마음에 든다. 엄마도 시간이 지나면 어른으로 성장한 내 모습을 기특해하실 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