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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연 May 21. 2024

부부의 사랑은 순진한 핑크색이 아니다

사랑은 변하는 거야

내가 사랑한 건 당신 그 자체였을까,
내 상상 속의 당신이었을까.


연애 초반 우리는 상대의 호감을 얻기 위해 자신의 본모습을 숨기고 상대에게 모든 걸 맞춰준다. 집돌이가 밖에서 12시간 이상을 보내고, 짠순이가 데이트 풀코스를 쏴도 일상에 전혀 대미지가 없다. 사랑의 호르몬에 뇌가 마비된 탓인지 우리는 사랑에 빠지면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자아를 발견한다.


그리고 꿈꾼다. 이 사람과 결혼만 한다면 평생 꽃길만 걸으며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결혼하고 살다 보면 달라서 끌렸던 그의 매력들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결점이 되고, 항상 함께하고 싶어서 한 결혼이 답답한 구속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우린 분명 서로 같은 언어로 이야기하는데, 왜 말들이 통하지 않고 튕겨 나오는지 서로에게 이야기하는 게 마치 벽에 대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는 답답함을 토로한다.


씁쓸한 말이지만 결혼을 하고 나면 우리 앞에는 상대에게 실망할 일들만 남는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것처럼 사랑의 고점에서 한 결혼은 식을 올림과 동시에 천천히 식어간다. 결혼을 하고 나면 상대를 아름답게 비춰줬던 콩깍지 필터도 사라지고, 전처럼 상대에게 잘 보이고자 노력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참 이상하지 않는가? 고르고 골라 이보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서 한 결혼이었는데, 결혼을 하고 나니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이 사람 맞나?'싶다니, 웃픈 이야기지만 우리는 결혼을 하고 나서야 콩깍지가 벗겨진 쌩눈으로 내 남자(내 여자)의 및 낯을 보게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 결혼이라는 건 사랑의 종착지가 아닌,  익숙하지만 어딘가 낯설고 거슬리는 남과 여가 다시 서로를 알아가고 친해지는 과정이 아닐까 싶었다.




신혼 초반 작은 일에도 크게 칭찬해 주던 남편이 지금은 잘한 것보다 잘 못한 거를 들춰내 잔소리를 하고 한숨을 내쉰다. 예전에는 문제 되지도 않았던 일들이 지금은 그의 심기를 건드리기도 한다. 분명 사람은 그대로인데 주기적으로 업데이트되는 컴퓨터 프로그램처럼 내 배우자도 점점 더 복잡하고, 어렵게 업데이트가 되어가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9년이 된 지금도 우리는 쿵하면 짝이 아닌, 쿠웅~? 하고 삑사리를 낸다.


처음에는 전과 달라진 남편의 태도에 상처를 받기도 했다. 언제는 다정했다가, 또 언제는 냉랭해지는 그의 반응에 혼란스럽기도 했고, 그가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에 우울한 기분을 느낀 적도 많았다.


부부의 사랑은 순진한 핑크색이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면 서로를 위해서라면 뭐든 기꺼이 해주던 달콤한 허니문 시절은 무척 짧은 기간에 불과했다. 서로를 사랑한다는 사실은 그대로지만, 그 모습은 흘러가는 시간처럼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다. 사랑은 변하는 거였다.


하지만 우리는 흔히 혼인관계로 묶인 사랑은 변하면 안 된다고 착각한다. 그래서 너무나 당당하게 배우자 인생의 1순위 점유권을 주장한다. 그래서인지 배우자가 내 부탁을 들어주지 않거나, 자신을 대하는 모습이 전과 달라졌다고 느끼면 서운함과 속상함을 감추지 않는다.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엄마의 희생과 헌신, 다정한 배우자 모두 중요한 역할이다. 하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건 그 모든 역할을 수행하는 본캐인 '나'의 행복이다. 행복한 젖소에서 양질의 우유가 나오듯 본캐가 행복하지 않다면, 가정도 우울 그 자체기 때문이다.


우리가 결혼을 하는 이유는 전보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다. 그런데 결혼 후 집이 창살 없는 감옥처럼 느껴진다면 그건 개인의 행복을 뒤로하고 가장, 부모, 배우자로서의 삶에만 집중하라고 강요하기 때문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배우자 인생의 1순위가 나 혹은 가정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이기적인 욕심이다. 우리 모두 자기 인생의 1순위는 자기 자신이다. 그래서 사이좋은 부부들은 아무리 가까워도 서로의 영역을 존중해 준다. 서로에게 자유시간을 주며 각자의 행복 추구권을 보장해 준다.


나그네의 옷을 벗긴 건 매서운 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햇살이라는 이솝우화가 떠오른다. 부부도 이와 마찬가지인 것 같다. 배우자가 집에 붙어있길 바란다면 억지로 잡아두지 말고, 자유롭게 놓아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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