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 아내로 살 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남편은 올해 소방서를 그만두기로 했다.
여보, 나 더는 못 하겠어
남편은 재작년부터 소방관 생활을 힘들어했다. 매일같이 열이 났으며 온몸에 염증도 생겼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가끔은 '악' 소리가 나올 정도로 극심한 편두통에도 시달리기도 했다.
타이레놀로 하루하루 버티는 남편을 지켜보는 건 괴로운 일이었다. 도와주고 싶어도 가족으로써 도와줄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었다. 소방서에서 24시간 긴장상태를 유지했을 테니 집에 있을 때만이라도 편하게 있게 해주는 것, 그게 내가 남편에게 해줄 수 있는 위로이자 응원이었다.
소방관 평균 수명이 60이 안 된다고 한다. 옆에서 지켜보니 왜 이리 평균수명이 짧은지 알 것도 같다. 사람들은 불을 끄거나 사고현장에서 사람을 구하다가 단명할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남편을 보니 소방관들은 불규칙한 생활습관 때문에 몸이 다 망가져서 일찍 죽겠구나 싶었다.
소방관은 일반 직장인과 근무패턴이 많이 달랐다. 소방서에는 크게 내근과 외근이 있다. 내근(內勤)은 소방서 안에서 행정일을 하며 일반 직장인들처럼 9 to 6 근무를 하고, 외근(外勤)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현장 위주의 업무를 하며 3교대로 돌아간다. 24시간 근무 후 이틀 쉬고, 또 24시간 근무를 한다.
그림으로 보는 소방관 근무표
남편 말에 따르면 다른 소방관 동료들은 현재 외근 근무표에 굉장히 만족한다고 했다. 하루 근무하고, 이틀을 쉬니 개인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건 케바케였다. 남편은 1년 넘게 육아휴직 후 최근 경방(불 끄는 업무)으로 복직을 했는데 24시간 당직근무 이틀 만에 백기를 들었다.
남편은 육아휴직 후 완쾌된 건강이 복직과 함께 나빠졌다. 그리고 남편의 업무가 불 끄는 일이라는 걸 듣는 순간 내 건강도 같이 나빠졌다.
뉴스에서 들리는 화재사고와 소방관 관련 소식들이 남일처럼 안 느껴졌다. 출근한 남편의 뒷모습에는 항상 불안이 뒤따랐다. 평소 꾸지도 않는 꿈 속에서 남편이 쓰러지는 장면까지 보자 남편도 나도, 제명에 못 살 것 같았다.
그래,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아보자!
소방서 근무 12년, 곧 승진을 앞두고 있고, 아이도 둘이나 있지만 우리는 과감히 유턴을 하기로 했다.
세상 사람들은 소방관을 사회의 영웅이라며 치켜세우지만, 밖에서의 영웅도 집에서는 물가에 내놓은 아이이자 아픈 손가락이다. 항상 애잔하고, 걱정되는 존재다.
12년 만에 남편은 소방관 옷을 벗는다. 그리고 사회의 영웅이 아닌, 우리 집 다정한 가장으로 돌아오기로 했다. 남편의 새 출발을 응원하며, 힘들긴 했지만 영광스러웠던 지난 시간들을 소방관 아내의 시점에서 기록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