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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마사 Aug 21. 2024

친절한 압둘

소개팅 필패의 역사

프롤로그에 밝힌 것처럼 주혁이는 인기가 참 좋았다.

여자친구가 끊이지 않았던 것도 인기의 덕이었다.

그것도 나이도 어리고 이쁘장한 여자친구들이었기에 옆에서 지켜보는 나는 항상 부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여자친구들이 많았기 때문에 내게도 소개팅 건수가 많이 생겼으니까.

나로서는 감사한 일이었다.

비록 결과가 대부분 좋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주혁이에게는 친한 여자동생이 있었다. 

대학교 동창이라고 했다. 

주혁이가 군대등으로 졸업이 늦어진 탓에 나이차가 꽤 나는데도 함께 학교를 다녀서 그런지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다.

서로 오빠 동생하며 친하게 지내는 사이라 나도 몇 번 술자리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어느날 갑자기 주혁이가 그 여자 동생이 아는 언니를 소개시켜 준다며 만나보라는 제안을 했다.

당시에 그녀는 학원에 다니고 있었는데 학원 강사라고 했다.

학원 강사라면 당시에도 돈도 잘 벌고 눈도 높을텐데 왠지 쌔한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거절을 하려고 했는데 상대가 적극적이라며 만나보라는 말에 만나기로 결정을 했다.


소개팅 장소인 강남역으로 나갔더니 주선자인 여자 동생이 있었다.

내심 저런 상대면 소개팅 자리도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끼리끼리 만나는 법이니까.

그날따라 주혁이는 회사 일이 바빠서 소개팅 장소에 오지 못했다.

편의상 주선자인 여자동생을 A라고 하겠다. 그리고 소개팅 상대는 B로 지칭하겠다.

A와 만나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B가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첫 인상은 시원시원한 인상의 A와는 정반대였다.

마른 체구에 날카로운 눈빛의 그녀는 내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일단 자리에 앉아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는데 A가 갑자기 자신의 남자친구를 이 자리로 부른다고 했다.

혼자 있자니 심심하다는 것이다.

거의 일방적인 통보후에 남자 친구가 도착했다.

그는 놀랍게도 아랍인이었다.

이름은 압둘로 대기업에 다니는 엘리트였다.

생각보다 한국말도 잘해서 대화를 나누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아랍인 답게 이목구비도 뚜렷하고 훤칠한 인상이었다.


자, 벌써부터 이상하지 않은가? 

소개팅 자리에 와서 남의 남자친구를 소개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짐작이 맞았다. B에 대해서는 지금도 기억나는게 별로 없다.

주로 압둘하고 이야기를 했으니까.

대체 내 소개팅 상대가 B였는지 압둘이었는지 헷갈릴 지경이다.

그렇다고 오해는 하지 않길 바란다.

난 남자취향은 아니니까.


아무튼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압둘은 이야기도 재밌게 잘 했다.

그 자리에서 대화를 주도했던 것 같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나도 재미가 느껴져서 B보다는 압둘과 이야기를 나눈 시간이 길어졌다.

한참을 수다를 떤 끝에 A가 압둘과 데이트를 한다며 자리를 떴다.

그때까지 있었던 것도 이상하지만 이제부터는 B와 소개팅을 진행해야만 했다.

그 어색한 느낌이라니...

B도 마찬가지였나보다. 갑자기 친구를 부른다는 것이다.


당시의 나는 너무도 순진했던 모양이다.

그걸 또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가 오자마자 감자탕 집으로 옮겨서 소주를 마시며 저녁을 먹었다.

술이 들어가는데도 전혀 취기가 돌지 않았던 것을 보면 그 상황이 얼마나 어색했음을 알 수 있다.

B와 친구는 그 자리에서도 나를 아랑곳 하지 않고 지들끼리 수다를 이어갔다.

지루한 식사 시간 끝에 드디어 해방의 시간이 왔다.

저녁을 계산하고 나오자 마자 B와 헤어졌다.

애프터고 뭐고 신청할 마음이 1도 들지 않았다.

그것은 그녀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그날 저녁에 주혁이는 바쁜 회사일을 마무리 하고 우리 집앞에 와서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야만 했다.

자기도 A가 왜 그런 사람을 소개했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뒤늦게 안 사실인데 A는 평소에 B를 싫어했다고 한다.

그래서 B에게 물 먹어보라는 생각에 나를 소개한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무슨 죄가 있다고?

그 이후로 A를 만난 적은 없으니 그에 관한 자세한 내막을 들을 기회는 없었다.

확실한 것은 압둘은 착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다시 보고 싶지는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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