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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마사 Aug 14. 2024

프롤로그

소개팅 필패의 역사

생각하면 할수록 희한한 일이다.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노력이 부족했다면 이해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를 아는 누구에게 물어봐도 노력이 부족했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해봤으니까.

지독하게 운이 없었다고 생각할 수는 있다.

이대로 하늘을 원망하며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과거에 대체 어떤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 암울하게 시작하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이성을 만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 가장 확실한 방법은 자연스러운 만남일 것이다.

학교나 직장, 그리고 동호회 등에서 자주 마주치다가 눈이 맞아서 사귀는 경우 말이다.

아쉽게도 나에겐 이런 행운이 따르지 않았다.

외모 탓일 수도 있고 환경 탓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마냥 하늘에서 떨어지는 기회만을 기다릴 수는 없었기에 인맥을 이용해서 소개팅을 할 수 있었다.

다행히 대인관계는 좋았기에 여러분이 생각하는 이상의 소개팅을 할 수 있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속담을 들어봤을 것이다.

내게는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근성이 있었기에 남들은 한 번만 겪어도 좌절할만한 상황에서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소개팅을 할 수 있었다.

지금 당장은 힘들지만 꾸준히 만나다 보면 한 명쯤은 내 짝이 있을 것이다라는 기대를 가졌던 것 같다.

아무리 운이 없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제대로 됐어야만 했다.

주변만 봐도 전혀 상상도 못 한 상황에서 성공하는 모습을 종종 봤었기에 나도 꾸준히 하다 보면 좋은 인연이 생길 것이라 기대를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에게 그런 행운은 찾아오지 않았다.

잘되는가 싶더라도 이상한 이유로 깨지기를 반복했다.

때로는 좌절도 하고 자책을 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었다.

이왕에 이리된 것, 끝까지 해보자라는 근성으로 달려들었고 결과는 항상 똑같았다.


이제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순도 백 프로의 내가 겪었던 소개팅 이야기이다.

설마 이런 일이 한 사람에게 일어날 수 있겠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리얼이다. 나도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이야기에 앞서 몇 명의 등장인물을 소개한다.

내게 소개팅을 해준 고마운 사람들이다.

비록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그들을 원망하지는 않는다.

제대로 못한 것은 내 책임이 크니까.

기회를 준 것만으로도 감사한 사람들이다.


a. 주혁이 : 배우 남주혁과 비슷한 외모의 절친이다. 외모뿐만 아니라 말솜씨도 좋아서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이 친구가 해준 소개팅이 전체의 40%는 된다. 문제는 워낙에 인기가 많고 인맥이 넓다 보니 제대로 검증을 하지 않고 내게 소개를 해준 적도 많았다는 것이다. 

b. 수달이 : 덩치는 큰데 귀여운 인상의 동창이다. 이상하게 수달을 닮아서 수달이라고 불렀다. 이 친구도 발이 넓어서 다양한 직종의 여성들을 소개해 줬다. 다양한 직종이라서 그런지 희한한 경험도 많이 하게 해 준 친구다.

c. 피닉스 : 많지는 않았지만 꽤 큰 임팩트의 소개팅을 해준 분이다. 오랫동안 다닌 회사의 대표다. 망할 것 같은 회사를 우직하게 끌고 가는 모습을 보고 피닉스라는 별명을 내 맘대로 지어서 부르고 있다.

d. 그 외 : 직장 동료, 그리고 후배들, 동호회 친구들 : 다들 잘되기를 바라며 다양한 소개팅을 해줬지만 결과는 항상 아쉬웠다.


이대로 마무리하기는 아쉬우니 가벼운 에피소드를 하나 해보겠다.

수달이가 해준 소개팅이었다.

같이 일하면서 친하게 지내는 동생이라고 했다.

키도 크고 성격도 좋아서 나와 잘 어울릴 거라는 말에 만나기도 전에 내심 기대에 가득 차 있었다.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녀를 만나기로 한 곳은 잠실 롯데월드 입구의 실내 분수대였다.

설레는 마음을 달래며 옷매무새를 다듬고 있었는데 문자가 왔다.


"어디세요?"

"분수대 앞에 있습니다."

"거의 다 왔어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천천히 오세요."


천천히 오라고 했더니 아예 안 올 줄은 몰랐다.

금방 온다는 그녀가 마지막 문자를 끝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10분, 20분... 야속하게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문자도 해보고 전화도 걸어봤지만 아무런 답이 없었다.

순간 섬찟한 기운이 심장을 스치고 지나감을 느낄 수 있었다.


'설마, 나 차인 거야?'


뒤늦게 수달이에게 연락을 했다.

수달이는 그럴 리가 없다며 연락을 해본다고 했다.

결과는 다들 예상하는 그대로다.

얼굴도 못 본 체로 차여 버린 것이다.


좋게 생각하면 돈이 굳은 것이고 나쁘게 생각하면 얼굴도 못 보고 차인 것이다.

너무도 어이가 없어서 화도 나지 않았다.

하긴 앞으로 할 이야기에 비하면 이건 화낼만한 일도 아니다.

가벼운 해프닝에 지나지 않는 일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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