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틴의 설계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본격적인 퇴고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글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내가 쓴 글이라고 해도 이것이 정말 책으로 세상에 나올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자기 검열의 벽이 생긴 것이다. 자기 검열의 벽은 고민하면 할수록 높아지고 두꺼워진다. 지금까지는 글 쓰는 것이 재미있었다. 퇴고에 들어가게 되면서 재미보다는 부담이 늘어가기 시작했다. 부담이 늘어날수록 글을 바로 보기가 어려워졌다. 내가 쓴 글임에도 불구하고 수정을 하기 위해 보면 볼수록 낯설게만 느껴졌다.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여기까지 오는데 무려 9개월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이미 계약까지 마친 상황에서 어떻게든 글이 나와야 했다. 여기서 멈추게 되면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수많은 지적사항을 조금씩 고치기 시작했다. 나는 할 수 있다는 말을 하루에도 몇 번이고 되뇌어야 했다.
글이 쓰고 싶지 않을 때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안된다. 금방 포기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습관에 익숙해져 버리면 점점 글을 쓰기가 어려워진다. 쓰기 싫은 순간에도 어떻게든 써야 한다. 최소한 몇 페이지라도 더 봐야 한다. 힘들 때 확인한 부분이 의외로 책 출간 이후에 호평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억지로 짜냈다고 생각하지만 절박한 상황에서 나온 글이라 독자들의 마음에도 와닿은 모양이다. 글은 편하게 쓸수록 공감을 얻기가 힘들다. 작가가 간절하게 써야 독자도 그것을 느끼게 된다. 글에 영혼을 담아야 하는 것이다.
퇴고 과정에서 영혼을 담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경험하게 됐다. 평소에는 기상시간과 취침시간을 가능한 일정한 루틴을 지켜왔었다. 하지만 퇴고를 할 때는 어쩔 수 없이 루틴을 깨야만 했다. 글이 잘 써지는 날에는 밤을 새워서 글을 써야만 했다. 글은 몰입의 순간이 중요하다. 몰입의 순간에는 평소에 막혀 있던 부분이 신기하게도 술술 풀린다. 하루에 몇 페이지를 넘기기가 어려웠던 상황에서 1만 자 넘게 수정한 날도 있었다. 왜 작가들이 눈이 휑한 상태에서 글을 쓰는 것인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 들은 몰입의 순간을 즐겼던 것이다. 퇴고 과정에서 나 역시 몰입의 순간을 몇 번 경험했다. 그날은 집에 돌아가지 않고 사무실에서 밤을 새웠다. 이런 날에 쓴 글은 다소 오타가 있을지는 몰라도 내용만큼은 몰입감이 있었다. 집중해서 쓴 글의 장점이다. 몰입의 순간을 거쳐며 조금씩 퇴고를 마무리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피드백과 두 번째 피드백에서 나온 수정사항을 모두 수정한 뒤에 다시 출판사로 보냈다. 이번만큼은 퇴고를 통과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프로의 눈으로 보기에 내 원고는 아직 부족한 구석이 있었나 보다. 세 번째 피드백이 날아오게 된다. 이번에는 수정사항이 더 많았다. 예정된 인쇄 시작까지 채 2주가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표지 디자인도 뽑아야 하고 인쇄를 위한 준비도 해야 하기 때문에 실제로 내게 주어진 시간은 일주일 뿐이었다. 그 안에 모든 수정사항을 고쳐야 했다. 단단한 각오로 다시 퇴고 전쟁에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