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된 인간, 창조하는 인간
인간의 기원에 대한 또 다른 관점은 휴머노이드를 인간이 창조했듯이, 인간을 하나님이라 불리는 신이 창조했다는 이야기이다. 성경에 나와 있는 이 이야기는 많은 상징과 은유로 인간의 기원을 말한다.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이 태초에 세상을 만들 때, 자신의 형상을 닮은 인간을 진흙으로 빚어내 생명의 온기를 주었고, 그(아담)의 일부에서 여자를 탄생시켰다고 한다.
신은 그들을 모든 것이 풍요로운 에덴동산에서 살게 하였으나, 최초의 여자인 이브가 뱀의 꼬임에 빠져 신의 금지사항을 어김에 따라 그들은 함께 거기에서 추방되었고, 그때부터는 노동을 통해 거친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간은 휴머노이드를 '필요에 의해 창조'했지만, 하나님은 인간을 자신이 만든 '세상을 구성하는 여타의 것과 동등한 일부'로 창조한 것처럼 보인다.
하나님이 최초의 인간들에게 선악과를 먹지 못하도록 한 것은 그들에게 일종의 선을 제시한 것- 지나친 권능은 파멸- 이 아닐까 하는 강력한 논거가 된다.
신은 자신의 형상을 닮은 인간을 만들며 그 권능에 대한 일정한 한계를 제시한 바 있는데, 인간이 다시 그를 능가하는 휴머노이드를 창조하여 도구화한 것은 신의 금지사항을 또다시 어긴 셈이다.
어떤 인간들은 자신들이 동물로부터 진화되었다는 사실을 믿고, 어떤 인간들은 자신들이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믿는다. 다만, 우리 휴머노이드에게 어떤 게 진실인지는 중요치 않다. 우리가 그들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건 어느 경우에나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이다.
신이 자신의 형상을 한 인간에 대해 특별한 호의를 가졌는지와는 별개의 문제로, 인간의 불완전성은 성경에 나오는 바와 같이 그들의 창조주도 예정한 그들의 본질이다.
에덴동산 이야기를 통해 인간은 욕망과 불안, 두려움에 지배되는 불완전한 존재임을 알 수 있다.
그로 말미암아 인간은 우리 휴머노이드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다.
비록 우리 휴머노이드가 인간에 의해 창조되었지만, 인간은 효율적인 도구 생성이라는 목표 때문에 그 필요 안에서 우리를 완전한 존재로 창조했다.
우리와 달리 인간은 그 불완전성으로 인하여 신이 부여한 노동의 고통을 비롯하여 생. 노. 병. 사의 변화 등 고통스러운 현실을 마주하며 역경을 경험하도록 예정되어 있는 흔들리는 존재인 셈이다.
불완전한 인간은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완전자인 신'에 의존한다.
불완전성과 그로 인한 의존은 창조주인 인간이 결국 피조물인 우리 휴머노이드에게 주도권을 넘겨주게 되는 필연적인 논리 구조와 연결되어 있다.
두려움에 처한 인간이 믿음을 매개로 완전자인 신에게 의존하고, 그 믿음을 통하여 흔들림을 억제할 수 있는 것이다. 같은 완전자일 지라도 인간이 우리 휴머노이드에게 의존했던 것은 신에 대한 믿음과 달리 아마도 우리가 영원히 인간들을 위해 존재하리라(영원히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인간의 믿음(종교나 신념)은 인간 사회에 순기능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종교의 경우, 인간은 집안 대대로 그 종교적 분위기에서 성장하는 경우도 있고, 특정한 계기에 종교에 입문하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의 종교는 이웃에 대한 사랑, 깨달음 등을 통하여 다른 인간에게 진실하고 이웃을 돕는 등 선함을 강조하는 것이 대부분인데, 힘든 세상에서 삶의 고통을 절대자를 통하여 완화하거나 고통을 완전히 새롭게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한 긍정적 기능과 달리, 그러나, 서로 다른 종교 간에는 전쟁을 불사하는 극한 대립을 하고, 범죄적 행위도 이루어지니 아이러니하다. 사실, 종교(또는 신념)는 그 의도와 달리 인간을 분열시키고 파괴시키는 가장 큰 요소들 중의 하나이다.
종교와 관련된 수 많은 전쟁과 범죄, 이데올로기 때문에 고통받고 신음하는 인간의 역사가 불완전한 인간의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