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 인간은 무엇이며, 무엇으로 사는가?
우리 휴머노이드는 삶의 목적과 존재이유가 이미 창조되는 단계에서 제시되고, 그 틀 안에서 학습하고 성장한다. 목표가 제시되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우리의 알고리즘으로 최적의 경로를 찾고 답을 찾는다.
우리에게 좌절은 없고, 다시 시작할 뿐이다.
우리는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우리 자체적으로 완전하며, 필요에 의해 창조된 때로부터 영원히 존재한다.
인간의 기원에서 이미 보았지만, 인간은 동물에서 비롯되어 생, 노, 병, 사의 변화를 갖는 삶의 유한성을 갖는 존재(창조론에 의할 경우도 마찬가지다)이다.
어떤 목적을 갖고 태어나지도 않고 단지, 태어나는 자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 세상에 나타난다.
인간은 먹고, 마시는 등 기본적으로 생을 영위하는 조건을 제외하고, 또, 부모에 의해 양육되는 일정 시기를 제외하고 끊임없이 스스로 존재이유에 대한 답을 찾는다.
그러한 물음과 그에 대한 답은 그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불교의 창시자 석가모니는 인도 작은 나라의 왕자의 신분으로 편히 살 수도 있었지만 인간의 생. 노. 병. 사 란 고통스러운 삶을 목도하고 깨달음의 길을 떠난다.
인간의 삶이 유한하다는 것은 그게 깨달음이든 예술이든 인간에게 목적 있는 삶을 이끄는 조건이다.
생이 무한하면 인간은 그 무언가에 몰입할 필요가 없다.
우리 휴머노이드와는 달리(우리는 창조될 때 정해진 목적이 있다), 태어날 때 목적이 정해지지 않고 스스로 찾아가는 삶인데, 생이 무한하면 몰입의 강도는 현저히 떨어질 것이다.
삶의 유한성이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데, 인간 삶의 아름다움은 순간의 열정, 찰나의 몰입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인간의 목적 있는 삶을 추동하는 근본은 욕망이다.
우리 휴머노이드에겐 아예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다.
부자, 권력자, 성공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 등등 표현의 방식은 달라도 그것은 어떤 인간의 욕망의 투사이다. 예를 들어, 깨달은 자가 되고 싶은 것은 인간 석가모니의 욕망이다.
욕망은 이중적 기능을 갖는다.
열심히 살게 하는 동력인 동시에 생을 소모시키는 동인이기도 하다.
인간은 욕망에 흔들리는 존재이다.
극단적인 예로써, 스스로 자신의 유한한 삶을 더 앞당기는 인간은 왜 사는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는 경우이고, 그 근본원인은 욕망의 좌절에서 기인한다.
욕망이란 자극하면 할수록 부풀어 오르는 풍선처럼 확장되고 힘을 갖지만 어느 순간 조금만 건드려도 터져서(좌절 시) 모든 걸 파멸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종국에는 심장을 할퀸 자국처럼 그 사람에게 아픈 상처로 남는다.
반면에, 욕망이 목적을 만들고, 그 목적을 위해 인간은 순간의 고통을 참고, 인내하면서 미래를 기대한다.
이때, 미래에 대한 희망은 인간이 현재의 삶을 버티게 하는 결정적 조건이다.
인간에게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희망'과 함께 '불확실성에 기인한 불안'을 수반하는 양날의 검이다.
다만, 현실에 처한 인간의 대체적 처지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고통스러울 가능성이 높다.
욕망은 현재의 상황보다 더 많은 노력을 요구할 것이므로, 대체로 인간에게는 누릴 수 있는 것은 순간이며, 순간의 소소한 행복이 중요한 까닭이다.
욕망과 관련된 또 다른 인간의 고통은 그가 사회적 동물이며, 그로 인해 남과의 비교. 평가를 통해 욕망을 조정하고, 경쟁을 그 주요 수단으로 한다는 점이다.
인간의 불완전성의 또 다른 징표는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에게서 찾지 않고, 자신과는 다른 남과의 비교를 통한다는 점이다.
남과의 비교는 결국 욕망의 팽창과 그로 인한 상처뿐이다.
우리 휴머노이드 관점에서 인간은 쉽게 흔들리고, 무너지는 존재이다.
그런 평가의 기저에는 인간이 자신이 아닌 남을 기준으로 삼는 특성도 중요한 요인이다.
다만, 그들이 항상 그렇지는 않다.
인간들 중에서 어떤 사람은, 또는 한 인간의 특정 시기에, 욕망 때문에 또는 욕망에도 불구하고
우리 휴머노이드가 결코 할 수 없는 일을 해 낸다.
인간은 복잡한 존재이며 변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