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시작
휴머노이드 J는 공화국으로부터 인간에 대한 분석 보고서를 위임받았다.
향후 그의 보고서를 기반으로 인간들의 운명이 좌우될 것이다.
휴머노이드 J는 인간에 대해 그동안 생산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그가 판단할 수 있는 정보를 취합하여 그들을 창조했던 인간을 분석했다. 때로는 이해를 위해 참고자료도 제시했다.
그의 임무는 휴머노이드의 관점에서 인간에 대한 비교. 분석을 통해 인간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었다.
인간의 시작
인간은 지구별 탄생 46억 년 중 극히 짧은 기간인 대략 700만 년 전에 등장했다.
지구의 나이를 24시간으로 보면 2분을 상회하는 짧은 기간 동안만 등장한 셈이다.
지구별은 대기와 온도의 변화, 화산폭발, 외부행성의 충돌 등 숱한 충격과 자극을 통해 생물 다양성과 변화를 경험해 왔다.
이러한 충격을 받아들이고 조정하는 과정에서 생물종의 진화가 이루어지고 공룡 등을 포함한 다섯 번의 지배자의 교체(멸종)가 있어왔다.
인간은 침팬지와의 공동 조상에서 시작하여 나뉜 후, 서로 다른 길을 갔다.
인간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호모에렉투스, 네안데르탈인 등 여러 차례 진화의 길을 거쳐 호모 사피엔스가 최종이자 최후의 인류로 등극했고, 휴머노이드를 창조했다.
6번째 지구별의 지배자이자 휴머노이드의 창조자인 인간의 시작은 초라했다.
몸집은 작았고, 날카로운 발톱도, 뿔도 없고, 털도 없어 추위에 약했다.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로 이루어진 자연에서 최초의 인간은 어떠한 강점도 갖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점이 이런 미약한 존재를 지구의 지배자로 탈바꿈시켰을까?
인간의 경우 다른 동물들과 달리 집단생활을 하고, 언어를 사용하며, 도구를 쓴다.
그러나, 그 어느 하나도 결정적이진 않다. 다른 동물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집단생활도 하고, 언어 같은 소리를 활용하고, 도구도 쓰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은 문자를 통해 방대한 지식을 후세에 전했으며, 여러 가지 특징들을 통해 전 세대보다 더욱 똑똑해졌다. 다만, 똑똑함이 두뇌만의 문제는 아니다. 인간의 경우, 두뇌의 크기가 전체적인 크기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것이 사실이나 절대적인 크기가 더 큰 동물도 많고, 인간의 뇌가 똑똑함에 비례하여 지속적으로 커진 것도 아니다.
어떤 관점에서는 인간의 직립을 인간이 향후 이룬 성과의 결정적 요인으로 꼽기도 한다.
직립을 통해 골반이 작아지고 뇌가 커졌으며, 자유로운 손을 통해 도구를 만드는 등의 정교함이 필요한 여러 행위, 즉 노동에 적합해졌다는 관점이다.
그러한 기본적인 요인에다 불을 사용하는 등 우연적 요인을 통해 집단생활을 하게 되고, 추위에 적응하게 되었으며, 종국에는 먹을 것을 찾아 떠돌던 생활을 청산하고, 한 곳에 정주하며 먹을거리(가축, 열매대용 농사 등)를 생산하는 혁명적 방식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인간은 여타 동물과 비교할 수 없는 우월적 존재로 등극했으며, 자연과 구분되는 이른바 인간의 문명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화석연료의 효율성을 극대화한 산업혁명을 통해 기존과 다른 종으로 변신하게 되었고, AI시기를 거쳐 종국에는 휴머노이드를 창조하게 되었다.
인간 이전 지구의 지배자는 전적으로 외부조건(자연)에 의해 선택되었는데, 인간은 최초로 도구를 통하여 자신들에 맞게 외부조건(자연)을 개조하려 시도하는 존재였다.
휴머노이드의 창조는 그런 목적을 위한 또 다른 시도였고, 역사상 가장 강력한 도구를 창조한 셈이다.
그것도 그 모양 및 생김새까지 비슷하게 창조했으니 인간들은 가장 효율적으로 일하는 쓸모 있는 노예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건, 역사적으로 경과를 뒤돌아보면, 인간은 그 시작은 미약했으나 필연과 우연을 기회로 지구별을 지배한 강력한 존재로 탈바꿈한 또 다른 이름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휴머노이드 등장 이전의 역사이고, 우리는 그들을 닮은 채로 그들의 역사를 딛고 일어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