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에게 편집자란 어떤 사람일까?’
그 질문을 곱씹으며, 얼마 전 출판사 편집자님께 받은 짤막한 편집 후기를 다시 읽어본다.
“저자는 타고난 에세이스트다.
삶과 관계에 대하여 음소거해 둔 채 조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독자는 그러한 저자의 관점에 마음을 싣고 따라가며 책의 페이지를 고비고비 넘어갈 때마다, 이전보다 조금은 더 누그러지고 따뜻해진 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노인요양은 모두가 피해 갈 수 없는 인생의 중요한 한 고비이자, 삶의 계절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가 모두 겪고 있는, 혹은 곧 겪게 될 편하지만은 않은 필연적 현실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단단한 마음으로 그 시간을 고통이 아닌 감사와 초월의 환희로 재창조할 수 있을까?
모두가 조건 없이 사랑받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처럼, 쉴 새 없이 쏟아내는 비난과 질타를 조금 접어두고, 그저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소중한 존재라 귀히 여김을 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서서히 스며들었다.
이런 것이 바로 에세이의 순기능이 아닐까 한다.
열띤 감정을 차갑게 하고, 딱딱하게 굳어버린 마음을 순하게 해주는.
저자가 인용한 사와다 도모히로의 말처럼, 저자의 글로 인해 독자의 삶도 한 겹 포개어졌기를, 그로 인해 독자도 케어를 받았기를 바란다.”
-포널스출판사 편집자님
편집자님의 이 짧지만 따뜻한 말이 내 마음을 깊이 울렸다.
에세이를 쓴다는 건 때로 혼자 고요한 방 안에서 스스로를 길어 올리는 작업 같았다.
매일 눈을 뜨고, 끼니를 채우고, 주어진 일상을 반복하며, 그 일상이 조금은 특별해지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 고민이 글이라는 형태로 스며들었다.
그 긴 고독의 시간을 건너오는 동안, 내 글이 누군가의 삶에 포개질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야말로 내가 이 길을 걸어온 가장 큰 이유를 발견하게 해 주었다.
책을 만드는 길에서 편집자님은 나의 글을 단단히 붙잡아주는 사람이 되어 주셨다.
때로는 물음표를 던져주시고, 때로는 쉼표를 찍어주시며 내 마음을 차분히 비춰보게 해 주셨다. 그분의 시선 덕분에 내 글은 더 깊고, 더 넓어졌다.
글을 평가받는다는 건, 삶을 평가받는 기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나온 삶의 여정을 위로받는 토닥임의 손길과 같은 것이다.
첫 독자가 출판사 대표님이었다. 대표님이 첫 독자가 되어주셨을 때의 그 감동의 여운이 아직 가시지도 않았는데, 두 번째 감동의 메시지를 편집자님에게서 받았다.
3번의 교열을 거치는 과정 중 2번을 마쳤다는 연락을 받았다. 저자가 수정할 부분은 따로 없으니 그저 확인만 해주셔도 좋겠다는 말이었다.
이제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건, 오로지 감사와 기도로 남은 시간을 채워야 한다는 뜻이었다.
출간하고 싶었던 출판사와 인연이 닿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좋은 대표님을 만나 넘치는 감동을 받게 하심도 감사합니다.
그 감동의 여운이 끝나기도 전에 편집자님을 통해 다시 한번 감동의 물결 속에 빠지게 하심도 감사합니다.
책의 출간을 바라보며 걸어가는 모든 여정 길이 감사와 기쁨, 행복과 사랑으로 채워지게 하심도 감사합니다.
이 모든 요소들이 저자와 출판사에게만 머무르는 책이 아니라, 꼭 필요한 곳, 꼭 필요한 분들을 향해 널리 세상 속으로 이어지길 기도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주님,
그분의 계획하심에 감사로 순종할 수 있는 사람 되게 하소서.
나는 오늘도 내가 쓴 문장들이 누군가의 삶에 포개어지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그리고 그 글 위에 독자들의 하루도 포개어질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렇게 서로의 삶을 케어하는 글을 쓰는 에세이스트로, 나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