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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울 Oct 25. 2023

책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어야 한다.

[나는 오늘도 10살 아이가 된다.]

알밤 하나가 “폴짝폴짝 통통‘ 뛰며 앞으로 나온다. 뒤 따라 자라 한 마리도 ”엉금엉금 척척 “ 기어 온다.


물찌똥, 송곳. 절구, 멍석, 지게까지 모두 각자의 동작을 취하며 무대로 향하는 사람들은 치매 어르신의 인지기능 개선을 도와줄  '인지활동 지도사'를 꿈꾸는 학생들이다.    

 

<팥죽할멈과 호랑이> 책에 등장하는 도구들을 의태어로 표현하며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동극을 진행하는 중이다.


동화의 스토리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할머니를 잡아먹으러 호랑이 한 마리가 온다.    

  

그러나 할머니는 팥을 거두어 팥죽이라도 먹고 나서 잡아먹으라며 호랑이를 돌려보낸다, 호랑이랑 약속한 날이 다가오자 할멈은 걱정 스러 움에 꺼이꺼이 울고 있다.


울음소리를 듣고 할멈을 도와주러 알밤부터 자라, 물찌똥, 송곳, 절구, 멍석, 지게가 찾아오고, 그 모습이 의태어로 표현되어 있다.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인지기능은 향상될 수 있다. 그러나 즐거움을 더하기 한 독후활동이 이루어진다 면 인지기능의 향상은 짐작할 수 없는 크기가 되어 기억에 남게 된다.   

  

수많은 독후활동이 있지만 나는 책에 등장하는 도구들의 의태어를 몸으로 익혀보는 활동을 선택했다.


치매의 종류나 진행 정도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치매가 있어도 동작이나 움직임은 정상이신 분들이

있다.


(치매는 인지를 담당하는 대뇌에 병변이 생기는 병이지, 동작이나 움직임을 담당하는 소뇌는 손상이 덜 된다.)     

저벅 저벅 킁킁 ! 사자를 표현하는 배우
엉금엉금 척척! 자라를 표현하는 배우

의태어를 몸으로 익혀서 표현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 있다. 몸은 비언어적 방법에 해당되기 때문에 뛰어난 관찰력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언어적인 방법은 상황에 맞는 단어를 적절히 선정하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비언어적인 방법은 오감을 바탕으로 한 관심이 있을 때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관심과 관찰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의 특징을 낚아채야 한다. 더불어 낚아챈 특징을 빠르게 재가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몸으로 표현이 된다. 아마도 이런 능력은 많은 훈련을 통해 얻게 된 센스이자 재치일 것이다.


난 이런 사람들에게 많은 매력을 느끼고 또한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보기 위해 직접 참여도 한다.   

  

상상과 함께 표현된 동작 덕분에 종종 책 속의 주인공이 되는 특혜도 누리고 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관객들은 한바탕 웃음바다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 바닷속에서 마음껏 파도를 타며 동작은 조금씩 자신감을 얻어간다.     


내가 책을 읽을 때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상상이다. 책을 쓴 저자가 책의 주인공이지만 책을 읽다 보면 내가 저자라도 된 것 마냥 착각에 빠질 때가 있었다.


주인공이 되는 특혜자도 그때 느껴 본 것이다.

그래서 더 많은 것들을 공감하고 얻어올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책 읽기를 시작할 때 사람마다 책의 종류가 다르지만 난 동화책으로 시작을 했다. 아동전집을 한 달에 천만 원씩 판매해 봤던 판매사원이기도 하다.


집 안의 벽면을 가득 메운 책장 속의 책들을 보며 구입한 돈이 아까워 쪼그리고 앉아 책 읽기를 시작했다.


이때 온몸으로 상상하며 읽었던 책들이 모두 동화책이었고. 상상의 묘미에 빠져들게 했다.     


동화책은 짧고 반복되는 문장으로 내용을 이해하기 쉽고, 그림에 담긴 정서에 쉽게 빠져들 수도 있다. 글씨를 읽지 않고 그림만 봐도 충분이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치매를 앓고 계신 어르신들에게도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치매는 인지기능의 저하를 가져오지만 감정은 건강한 사람처럼 모두 느낄 수 있는 질환이기 때문에 동화책으로 심리적 행복을 찾는 것은 충분히 할 수 있다.     


소위 딴짓이라고 불리는 이런 경험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독서지도사를 양성하는 오늘날 아주 많은 도움을 주는 귀한 자산이 되었다.


  지금은 마흔이 넘은 나이지만 여전히 동화책을 읽으며 그때의 감동을 회상하기도 한다.      


이때 나는 다시 10살의 아이로 돌아간다. 배역 하나를 맡아 학생들과 함께 동극을 하기도 하고, 관객이 되어 박장대소 웃음으로 배우들에게 화답하기도 한다.     


인지활동지도사 첫 강의는 독서지도사를 꿈꾸며 이렇게 달려간다. 이 수업을 하며 가장 많이 깨달은 것이 있다.      


“책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을 읽고 변화가 없다고 하는 것은 수단으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책을 읽고 책 속의 내용을 기억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런 기억력을 테스트하기 위한 수단으로 책을 이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책은 그 자체로 목적이다. 책과 하나가 되면 된다. 치매 어르신들에게 인지기능을 향상해 주기 위한 인지활동에 독서는 단연 앞 순위를 차지하는 활동이다.   

  

그러나 치매 어르신들에게는 인기가 많은 활동이 아니다. 책을 수단으로 사용할 때 흥미도 감동도 동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저 책 속으로 풍덩 빠져보자.     


그리고 책 속 주인공이 되는 상상의 날개를 활짝 펴자. 어디까지 날아갈 수 있는지는 날아봐야 아는 것 아닌가.          

의태어에 빠져들어 행복을 감추지 못하는 김교수와 사랑스런 제자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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