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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울 Nov 05. 2023

연필 한 자루에게 내 무의식을 들켜버렸다.

[난 오늘도 10살 아이가 된다.]

“어릴 적 만화 속에서 보았던 오르고 싶은 바벨탑, 그러나 수줍어 말도 못 하고 살았던 나, 이제는 두려움을 떨쳐 내고 당당히 세상으로 나아가려 한다. 뒷모습이 아닌 환한 얼굴로...”   

  

이 문장들을 읽어가며 눈물을 흘리던 한 분이 있었다. 인지활동지도사  강의 프로그램인 “난화”시간에 일어난 일이다.     

 

난화란 낙서, 다른 말로 낙화라고도 표현하며 긁적거리기란 의미로 사용하기도 한다.


종이 한 장에 점, 선, 면, 곡선, 도형 중 하나를 그려서 상대방과 교환한다. 서로 주고받은 종이에 그려진 점, 선, 면, 곡선, 도형을 이용해서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완성하면 된다.     

짧은 시간 안에 그리는 그림이다. 많은 생각을 담아낼 수 없는 단점이 있으나 오히려 많은 생각을 할 수 없어 진실한 내면의 모습과 만나기도 한다.    

 

그림을 그리고 나면  제목을 적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림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는 시간이 있다. 이때 문장을 읽으며 눈물과 만나게 된 것이다.


이 분이 그림을 통해 찾아온 내면의 모습을 잠시 소개하고자 한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은 지극히 내향적이었다. 그러나 마음속까지 내향은 아니었다. 언제나 오르고 싶었던 바벨탑을 높이 쌓아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을 향해 한 발씩 내딛고 싶었지만 두려움이 찾아와 종종 발목을 부여잡았다.

그러나 이제는 시작을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고 난화를 그리며 생각에서 실행으로 옮겨가기 위한 다짐을 했다.

    

이 분은 50대의 중년 여성이다. 사회생활의 경험이 많지 않은 상태로 집에서만 지내다가 요양보호사 자격증에 도전했다, 시험에 합격해서 자격증 취득까지는 무난히 통과했다.


 그러나 자격증 취득이 목적은 아니었다. 요양보호사로 일을 하며 경제적 독립도 하고 사회관계망도 만들어 갈 계획이었다.  계획을 실행으로 옮겨가려는 찰나에 또 다시 마주하게 된 것이 있었다. 그건 두려움이다.

    

계획과 실행의 간격을 벌려놓는 무서운 존재이기도 하다.  해야 할 이유보다 하지 못할 핑계들이 수도 없이 찾아들기 때문이다.


이 핑계들과 타협하지 않고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신감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 난 자신감을 만들어 가는 것 중 하나가 ‘준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분들에게 권하고 있는 강의가 인지활동지도사 과정이다.


 무언가 하나를 완성했다는 만족감을 얻기 위해 요양보호사 자격증에 도전하고, 막연한 미래를 위해 자격증 하나를 해 놓겠다는 생각으로 오시는 분들에게는 추천하지 않는다.     


그런 마음에는 열정도 없고, 자발성도 없다. 그저 의자에 앉아 흘러가는 시간에 내 몸을 맡겨놓는 모습과 만나게 된다.    

 

요양보호사 양성강의를 16년 동안 하면서 가장 많이 깨닫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건 무엇보다 자발성이다.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설사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그 일에 대한 감사도 없고 일회성으로 끝나는 기적을 의지할 뿐이다.   본 경험이 없어 다음  또한 스스로 만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든 일의 시작점은 언제나 “나”인 것이다.

    

이런 강의는 이미 요양보호사 양성과정 속에서 귀에 딱지가 앉은 만큼 부르짖으며 반복한다. 이 분도 내가 가르친 제자였으니 이 딱지가 꽤 간지러움을 태웠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인지활동지도사 강의를 신청하지도 않았다.    

 

난화를 그리고 마음속 생각을 글로 작성해 봤을 뿐이다. 그런데 이 과정이 무의식 속에 담겨 있는 모습을 감추지 못하게 한다. 연필 한 자루의 힘이다.    

 

 이런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내 마음 또한 감동의 진동을 울려댔다.  난 그 진동에 작은 희망을 넣어 다시 돌려주었다.   

  

“누구나 어린아이로 머물러 있는 지점이 있습니다. 어린아이 모습도 좋지만 조금 더 성장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면 힘을 내야 할 때입니다.


 한 발을 내딛는 것은 어제까지 살아왔던 삶에 용기를 더하기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창을 조금씩 열어 보세요. 살며시 파고드는 설렘 깃든 바람이 느껴질까요?


그 바람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날 망설임 없이 마음의 창을 활짝 열어 볼 날이 반드시 올 겁니다. 내 마음의 창은 오로지 나만 열 수 있는 창이니까요."


내가 보낸 메시지의 답은 환한 웃음꽃이 되어 돌아왔다. 눈물을 흘려 얼룩덜룩 해진 얼굴이지만 지금까지 보았던 그 어떤 꽃보다 이처럼 아름다운 꽃은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꽃은 만개가 되면 그때만 아름다움을 뽐 낼뿐 반드시 시들어 버린다.


 그러나 사람의 얼굴에 환한 만개를 드리운 꽃은 절대 시들지 않는다.  희망이라는 양분을 먹고 끝없이 계속 피어나기 때문이다.     

난화 수업은 그림으로 표출된 내면의 모습만 들여다보는 것으로 끝나는 수업이 아니다.


진단 다음에는 처방이 있어야 하고 처방을 바탕으로 치료가 되어야 온전히 모든 것은 제자리를 찾아간다. 이 수업도 그런 지침을 정해두고 진행한다.    

 

나를 찾아오는 과정은 선생님들이 결정해야 할 일이지만 만남을 했다면 반드시 진단이 될 것이고, 그 진단을 바탕으로 적절한 처방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한다.


난 언어라는 천연 약을 가지고 적절한 조제를 통해 말과 글로 처방을 하는 강사이자 작가이기 때문이다.     


이런 처방이라면 무의식을 들켜 버려도 그리 창피하지는 않을 것 같다. 난 오늘도 여전히 난화를 그리는 선생님들의 마음을 숨 죽이며 몰래 쳐다보는 도적질을 자초한다.     

     

난화 수업 중입니다. 열심히 도적질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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