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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울 Nov 11. 2023

눈을 감아도 네가 보이는 건 사랑꾼이 된 것이야.

[난 오늘도 10살 아이가 된다.]

“교수님, 눈이 이마에 있어요.”    

 

“하하, 코가 어디로 가버렸어요.”    

 

“저건 도대체 누구일까요?”    

 

칠판에 붙은 그림을 보며 감상평을 전하느라 바쁜 학생들이다.   

  

눈이 이마에 붙어있고, 코가 없고, 얼굴 윤곽은 없이 눈, 코, 입만 덩그러니 그려져 있는 얼굴의 주인공은 인지활동지도사 수업을 듣고 있는 학생들이다.    

 

당연함을 속속히 깨버리고 황당함을 가져오는 그림들이 나온 이유는 눈을 감고 상대방을 그려주기 때문이다.


 두 눈을 온전히 뜬 상태에서 그려주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왜 눈을 감고 그림을 그리는 것일까?  

   

수업이 시작되는 첫날 학생들은 각자의 자리를 찾아 앉는다. 그렇게 찾은 자리는 종강 날까지 큰 변동 없이 고정이 되기도 한다. 중간에 자리 변동하는 모습을 많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한 가지가 익숙함이 아닐까 싶다.    

  

이런 익숙함이 만들어주는 친밀함은 위대한 힘을 발휘한다. 그 힘은 끈끈한 관계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나란히 옆에 앉은 짝꿍을 매일 만나며 서로를 알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관계는 한계성을 가지고 있다.    

  

강의실이라는 공간 안에는 수많은 책상과 의자가 있다. 어느 곳에 앉아 어떤 사람과 짝꿍이 되느냐에 따라 한계성의 경계가 결정되는 것이다.


물론 강의실에 있는 모든 학생들과 다 친해질 수 있는 사람도 없다. 먼저 한 발을 걸어가고, 한 손을 내미는 적극적인 성향을 가진 분들을 중심으로 집단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강의를 들으며 강사에게 배워가는 것도 많지만 또 다른 소중한 배움은 함께 하는 사람들이 교제하고 소통하며 주고받는 마음이다.


강의실 안에서 만큼은 이름과 얼굴을 모르는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고, 대화 한번 해보지도 못하고 이별해야 하는 참사가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 참사를 막아내기 위해  강사가 가진 권력을 총동원한다. 자리 배열을 다시 하는 것이다.


맨 앞사람과 맨 뒷사람이 한 명씩 자리에서 일어나서 자리 바꾸기를 한다. 매일 보던 짝꿍이 아닌 생소한 짝꿍으로 다시 배치가 될 때까지 자리이동은 계속된다.     


아무도 내 권력에 반기를 드는 사람은 없다. (앞으로 나타날지 모르지만 그 부분은 미리 걱정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바뀐 짝꿍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어색함이 몰려 들것이다.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바꾸자마자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정면을 잠시 바라보게 한다.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면 책상에 종이 한 장을 펼쳐 놓게 한다. 그리고 사인펜을 든 상태에서 하나, 둘, 셋을 외치면 짝꿍과 바라보기를 시작한다.


이 시간도 오래 제공하지 않는다. 3~5초 정도 지나면 다시 등을 돌린채 짝꿍의 얼굴은 사라진다. 이때 눈을 감고  짝꿍의 얼굴을 그려보게 한다.     

눈을  감고 얼굴을 그리는 중입니다.

그림이 완성되면 조용히 본인만 확인하고 바로 뒤집은 상태에서 강사에게 제출한다. 제출된 그림은 칠판에 하나씩 붙이고 함께 감상을 한다.


 여기저기 터져 나오는 감상평을 충분히 듣고 나면 그림의 주인공을 맞추어가는 게임이 진행된다. 이 시간을 통해 많은 것들을 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림을 바라보며 내 얼굴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부터 손을 들고 맞추어 간다.


그야말로 나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내 그림도 찾는다. 내 얼굴에 어떤 특징이 있고, 내 이미지가 어떤 것인지 알아야 내 눈에도 내가 보인다.   

   

내가 나를 아는 것은 참 중요하다. 매일 거울을 보면서도 내 표정이 어떻고, 내 생김새가 어떤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기 때문이다.


가끔은 내 얼굴을 보며 미소 지을 때 어떤 모습이고, 눈물을 흘릴 때 어떤 모습이며, 화가 날 때 어떻게 변해가는지도 알고 있어야 한다. 인상도 만들어가기 나름이기 때문이다.    

 

난 표정 없는 얼굴과 마주할 때 가장 힘들다. 상대방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표정이 없다는 것은 감정 표현도 서툴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감정 표현만큼은 서툴지 않고 능숙한 사람이 되고 싶다. 건강한 감정의 소유자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야 관계도 온전히 이루어갈 수 있다.


이렇게 자신의 얼굴을 찾는 분들은 앞으로도 아름다운 인상을 만들어 갈 것이라 믿으며 셀프 칭찬을  해 주길 바라는 마음을 전한다.     


나를 찾지 못했다면 서로 찾아주기에 들어간다. 가장 필요한 것이 조곤히 들여다보는 마음이자 시간이다.


스쳐 지나가듯이 바라봐서는 절대 찾을 수 없다. 온몸에 날을 세우듯 모든 촉각을 동원해서 얼굴 전체의 이미지부터 특징적인 소품, 헤어스타일등을 관찰해야 한다.    

 

이런 관심의 시간을 온전히 제공하면 아무리 이상하게 그려놓은 그림이라 하더라도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주인공을 찾아낸다.  

    

관심만큼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알면 사랑한다.”라는 최재천 박사님의 말씀을 여전히 가슴에 새기고 있다. 알고자 하는 관심만 있다면 우린 누구든 사랑할 수 있다.     


나를 그려준 그림을 받아 든 모습 또한 잊을 수 없는 장면으로 기억하고 있다.


눈도 없는 얼굴, 코도 없는 얼굴, 외계인 같이 생긴 얼굴의 주인공이 나였다는 사실을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이런 과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나면 그림을 그려준 짝꿍에게도 감사함이 찾아든다.     

액자 까지 구매해서 간직하려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너무 닮았습니다.”


“내가 이런 모습이라니 너무 신기합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며 나도 잘 모르고 있던 나의 모습을 알아봐 준  짝꿍에게   함박웃음으로 보답해 주기도한다.    

 

3~5초 정도의 짧은 시간이지만 나를 그려주기 위해 온몸의 오감세포를 자극하며 집중했던 짝꿍의 마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눈을 감아도 네가 보인다는 것은 이미 너의 마음을 빼앗아 온 사랑꾼이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에게 사랑꾼이 되어가며 이 시간을 만끽한다.


곧 누군가에게 다시 전해주기 위해 열심히 사랑을 모아두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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