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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울 Dec 13. 2023

"도움"은 책임이 아니라 채움이다.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는 사람이 있다.

불가능한 일은 시도조차 안 하는 사람도 있다.

불가능일 중에서 구태여 가능을 따져서 거기 까지만 도전하는 사람도 있다.


그럼 나는 어떤 유형일까?

.

.

.

3번째 유형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가장 현명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결과물 없이 에너지만 소모되는 일을 구태여 할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첫 번째 유형을 사모하는 마음이 생겼다.


되는 것만 따져서 하는 사람이 현명한 것 같지만 딱 거기까지만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럼 불가능에 도전하는 사람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한계에 맞닿아 보는 경험이다.  불가능에 가까이 갈수록 나 자신이 가진 능력의 바닥을 보게 되었고, 답답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알랑한 오기는 있어서 그대로 주저앉기는 싫었다. 이 자존심이 발버둥을 치게 했으며 어느덧 나도 모르고 있던 나와 마주하게 되었다.


한계와 마주하지 않으면 나 자신을 평가할 수 없다. 어떤 것도 나 자신을 모르고 서야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내 발버둥은 겸손을 찾아주기 시작했다. 내 발버둥은 자만과 이별 선언을 빨리 하게 도와주었다.


내가 이런 삶을 사모하며 살아가기 시작하자 내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16년을 강의하며 개인과외를 진행해 본 적은 단 한 번뿐이다. 내 가슴에 묻고 있는 제자, 우리 엄마다. 그 이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개인과외를 요청하는 사람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늘 나에게 손을 내미는 분을 만났다. 혼자서 열심히 해보았지만 도저히 할 수가 없어서 연락을 주신 것이다. 그래서 부여잡았다.


자신의 한계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찾아오는 분은 어떤 부분이 이해가 안 되고, 어떤 부분이 헷갈리고, 어떤 부분이 전혀 모르겠는지 정확히 체크를 해서 온다.


그럼 최선을 다해서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한다. 온몸을 사용해서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나는 그 시간에 정성을 쏟는다.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 무조건 도와달라고 한 적은 없다. 무조건처럼 어려운 것도 없다. 사실 도움은 필요한 부분을 채워주기 위함이지 한 사람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시간 시험을 보고 시험지 채점을 했다. 문항 속에 체크해 놓은 내용들이 정확히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라고 알려준다.


 그러면 나는  그 부분을 해결해 준다. 이렇게 2시간을 보충하고 나니 뿌듯함을 안고 돌아가는 발걸음을 볼 수 있었다.


선생은 한 사람의 인생을 책임지고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다.  도움이 필요한 부분을 채워주는 사람이 되어주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난 선생으로 살지만 가끔 나도 선생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때 오늘을 다시 기억하며 가려고 한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바꾸고 싶을 때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할 것은 한계를 알고 있는 내 자신과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 겸손함은 또 다른 이에게 손을 내밀수 있는 용기를 줄 것이다. 그때 조금 더 성장할 수 있겠지.


오늘 나와 함께 했던 제자샘을 위해 기도한다. 운이 좋아 합격을 하든, 시험문제가 쉬 합격을 하든, 내가 알려준 부분이 시험 나와 합격을 하든 중요하지 않다.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오늘 제자샘이 보여준 용기는 그분 한분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용기를 받은 내 마음에 또 다른 감사를 심었다는 것이다.


이런 마음을 전해준 제자샘의 삶이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기도다.


그래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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