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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울 Dec 14. 2023

선물과 같은 사람이 되라고 하셨다.

"원장님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앞으로 후원 물품을 받을 때는 선별해서 받으면  안 되겠습니까?"


내 부탁에 원장님은 대답 대신 허무맹랑한 부탁이라는 눈빛을 보내오셨다.


종합병원을 그만두고 장애아동시설 간호사로 일 할 때가 있었다. 뇌병변 진단을 받고 하루 종일, 아니 태어나 지금 까지 오로지 누워서만 지내야 하는 아이들을 만난 적이 있다.


소뇌가 손상되어 평생 와상상태(자발적인 움직임 없이 누워서만 지내는 상태)로 지내야 하는 아이들은 이불 한 장에  온몸을  맡긴 채로 누워있을 수가 없다.


신체가 찍어 누르는 압박을  혈관은 쉬이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혈관 안에는 온몸에 있는 세포에게 공급해 줄 산소와 영양분이 들어 있다.


공급량이 줄어들거나  차단이 되면 어김없이  신체 부위 군데군데  욕창이라는 피부질환을 일으킨다.

그래서 이불이 아닌 특수 매트리스(욕창 예방을 위한 특수 침대)를 깔고 누울 수밖에 없다.


이 아이들이 몸을 맡기는 욕창예방 매트리스는 시설에서 구매하는 경우도 있지만 후원물품으로 들어온 물건들도 꽤 많다.


장애 아동의 상태를 조금 알고 있는 분들이 보내온 물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물품은 사용기한이 짧다. 몇 번 사용하지 않았는데 몸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군데군데 바람이 새어 버린다.


욕창 예방 매트리스만 그런 것이 아니다. 후원 물품장에서 꺼내오는 제품들은 왜 그렇게 오래 사용할 수 없는 단기 제품 들이었을까?


물품마다 가격을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내구성이 뛰어나고  좋은 제품들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난 이런 경험을 통해  다른 이의 손에 안기는 제품을 고를 때는 하나의 원칙을 세워 두었다.  내가 쉽게 구매할 수 없는 제품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내가 평소에 잘 사 먹을 수 없는 음식, 아니 한 번도 먹어보지 않았던 음식을 선물한 적도 있다. 비싸서 내 돈 주고 사 먹을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지금까지도 흔하디 흔해진 샤인머스캣 하나 내 돈 주고 사 먹어 보지 않았다. 난 왜 아직도 이 과일이 사치 같이 느껴지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물론 먹어 본 경험으로 너무 맛있어서 선물한 적도 있다. 그러나 그런 경우보다  사치 같아서 사 먹지 못했던 것들을 우선으로 꼽아왔다.


먹는 음식이 아닌 다른 제품도 같은 원칙을 적용시켰다.


이런 가치관 때문이었을까? 내가 받는 선물들도 그런 물건들이 많았다. 내 돈 주고 사 먹어 보지 못한 음식과 간식, 화장품  등등 이 내손에 찾아온다.


이런 생각을 불현듯 꺼내든 이유가 있다. 오늘 아침 독서 시간에 읽었던 유영만 교수님의 도서 <2분의 1> 책에서 말한다.


나이가 들수록
내가 먼저 누군가에게
선물 같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면 나를 만나는
사람은 뜻밖의 선물 받는 것처럼
행복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나는 타인에게 선물 같은 사람인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물어봐야
되는 이유이다.


"선물 같은 사람이 돼라."는 문장이 내겐 선물처럼 다가왔다. 아침부터 이문장이 머릿속에 맴을 돌며 내 마음을 일렁이게 했기 때문이다.


내가 누군가에 게 선물 같은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장애아동 시설에서 일하며  받았던 후원 물품들을 기억하며  나만의 해답을 찾아가 보려고 한다.


정답은 하나의 답이지만 해답은 여러 개라고 하셨던 유영만 교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구성이 뛰어난 사람이 되어야겠다. 호기심으로 만나  끝나 버리는 일회성의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오래 두고 같이 해도 좋은 사람이 있지 않은가.


두 번 사용하고 기능을 잃어버리는 그런 물건이 아닌 사용할수록 가치가 느껴져서 소중해지는 물건처럼 사람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내 자신을 돌아보며 내면이 단단한 사람이 되어가야만 한다.


어떤 것이 와도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심지 하나는 박아두어야 한다. 그것이 결국 내구성이 되어 줄 거니까.


<2분의 1> 책이 이런 구절이 있었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들어오면 다음날까지 앓는다. 낫느라고" 이영광의 <왜냐하면 시가 우리를 죽여주니까>중에서


한 번의 만남이었지만 여운이 오래가는 사람도 있다. 그 여운은 그 사람이 나를 만날 때까지  무단히 만들어 온 그 사람만의 색이었을 것이다.


 그 색은 그리움이 되어 가슴 한쪽을 물들인다.

어떤 것으로 지워보려 해도 지워지지 않고 물들어 있으니 이제는 지우려는 노력보다 끌어안은 채 살아간다.


한 번의 만남 이든, 여러 번의 만남 이든, 공통의 공식이 있다.


선물 같은 사람이 되려면 흔하디 흔한 그런 사람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이 다 같다고 하지만 그중에서도 다르게 나만의 색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어느 날 내가 그토록 열망하고 간절했던 것을 가진 사람을 만난다면 난 또 그 사람을 향해 한없는 그리움을 품을 것이다.


그리고 부러움을  과감히 드러내며 닮아가려는 애를 쓸 것이다.


그 사람은 나에게 선물처럼 다가온 사람이고, 나 역시 그 사람에게 선물이 되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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