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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울 Dec 16. 2023

초등 아들이 이별의 아픔을 알아버렸다.

"더 같이 하고 싶어요."


"더 오래 하고 싶어요."


"더"가 안 된다면 그냥 볼 수만 있으면 좋겠어요."


눈물 섞인 목소리로 이렇게 흐느껴 울면 난 어떻게 해야 할까?

그저 아무 말 없이 같이 눈물을 흘려줄 수밖에 없었다.


아들은 초등학교 6학년이 되어 처음으로 학원이라는 사교육을 시작했다. 사교육장을 가까이하지 않는 엄마 때문에 미루고 미루다 가게 된 학원이다.


연산을 어려워해서 방문 학습지  정도를 하다가 학습센터가 생겨서 한 번 와보면 어떨까?라는 선생님의 권유로 학원을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난생처음으로 학원 선생님을 만났다.


 나도 선생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라 그런지 몰라도 아이들 선생님에게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내가 말하는 관심은 이렇다 저렇다 따지고 드는 그런 깐깐함이다.

그저 아무 말이 없다면 아이들은 잘 지내고 있다는 생각에 전화를 하거나 연락을 먼저 하는 엄마는 아니다.


그런데 아들의 수학공부를 담당하게 된  선생님은 내가 연락을 하지 않아도 먼저 연락을  주곤 했다. 아들의 공부상태를 알려 주었고,  심리상태만 바뀌어도 자주 연락을 해서 이렇게 해주시면 좋겠다는 코칭을 해주셨다.


인간미가 넘치는 선생님 이란 생각을 했다. 아들에게 좋은 선생님이 와주신 것 같아 감사했고, 그 마음은 종종 문자나 작은 선물로 표현을 했다.


 이렇게 1년이 거의 지나갈 때쯤 선생님은 개인사정이 생겨 더 이상 같이 할 수 없게 되었다는 말을 전하셨다.  아들 보다 내게 먼저 전화를 걸어오셨는데 그 소식에 나 역시도  꽤  서운함이 밀려왔다.


어제가 마지막 수업이었다.  그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아들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며 밤을 지새웠다. 무슨 일이 있는가 싶어 물어본 질문에

위와 같은 답을 한 것이다.


선생님이 학원을 그만두지 않았어도 어차피 중학 과정을 올라가면 담당 선생님이 바뀔 예정이었다. 아들도 이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다.


그러나 학원이라는 공간 안에 기존 선생님이 있어서 얼굴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다고 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내 안에  있는 그리움이  회상되었다.  아들처럼 "더.... 더...."를 외쳐봐도  다시 만날 수도 다시 볼 수도 없었던 아쉬움은 어느덧 그리움이라는 이름으로 탈바꿈되어 내 안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난 이럴 때 달래는 방법이 있었다. 오늘 그 방법을 공유하기 위해 아들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다.


 그리고 우리는 카페에 나란히 앉아한 동안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정적이 지루해질 때쯤 난 이 말을 꺼냈다.


"아들, 모든 이별이 아쉬움을 남기는 것은 아니야. 그런데 아쉬움을 남기는 이별은 그냥 보내면 안 돼. " 더 "하고 싶지만 시간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그 자리에 믿음을 넣어 두면  조금 달래 지더라."



이 어려운 말을 13살 아들이 이해하기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분명히 어리둥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볼 걸 알기 때문이다.


그 눈빛이 오기 전에 나는 한 마디를 더하기 했다.


"혹시 선생님 하고  약속한 거 있어?"

"응 , 있지"


"그럼  그 약속을  지켜보려는 노력을 하면 돼. 먼 훗날 선생님을 다시 만날 수도 있고, 연락을 할 수도 있어. 아니, 둘 다 안 된다고 해도 선생님은 네가 좋은 사람으로 잘 자라기를 기도하고 계실 거야. 그 마음을 믿고 있으면 또 하루에 최선을 다할 수 있어."


이 말은 이해가 되었는지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난 이 약속을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 아들은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선생님과 나눈 시간을 소중히 여길 줄 알고, 더 함께 할 수 없는 이별에 가슴 아파할 줄 알기에 믿는 것이다.


그 마음이라면 약속을 지키기 위한 노력도 하게 될 거니까.


내가 그랬다. 아니 나는 지금도 그 약속을 지켜가기 위해 노력한다. 문득 찾아드는 그리움에 가끔은 몸서리를 치기도 하고 혼자 흐느껴 울 때도 있다. 그런데 그때마다 꺼내드는 것은 믿음뿐이다.


더 오래 같이 하면 좋았겠지만 만남과 헤어짐은 언제나 유효기간이 있었다. 그 기간이 만료되면 이미 주고받았던 마음을 회상하며 홀로서기에 들어간다.


 그런데 그때부터는 처음의 혼자가 아니다. 진심으로 나눈 마음들은 사라지지 않고  믿음이 되어 서로의 마음 저변에 차곡히 쌓여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흔들리는 풍랑에도 가장 안전한 곳은 바닥뿐이다. 사람의 마음도 가장 깊은 곳이 안전지대 아니겠는가.


난 이런 믿음으로 통곡이 따라오는 이별에 대처했다. 13살 아들이 이런 이별을 알았다는 것이 한 편으로 신기하기도 하며 뿌듯하기도 하다.

진심을 나눌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라는 것을 엄마인 내가 느꼈기 때문이다.


앞으로 더 많은 만남과 이별을 할 터인데 그때마다 오늘 나눈 이야기를 잘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새로운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학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창너머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주책맞게도 아들보다 더 가슴이 아련히 아파온 건 엄마인 나다. 이런 말을 하면서도 눈물을 참지 못하고 울먹이고 있었으니 말이다.



더, 더가 허락되지

않는다면

서로가 나누었던

진심이 담긴

심연을 들여다봐라.


심연 속 속삭임이

들리는가?


그 소리가

네가 살아가야 할

오늘이 되어줄 것이다.


그건 서로가 나눈

약속의 믿음이었으니까

-너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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