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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울 Jun 21. 2024

나는 왜 조곤히 강의를 할 수 없지?

요양보호사 양성, 병원 동행매니저 강의 등등 내가 진행하고 있는 강의들은 정해진 교재가 있다. 교재에 쓰인 단어들을 읽으며 요점정리만  해주어도 시험 합격은 가능하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강의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 책 읽기 수업을 못하는 이유에 대해 고민할 때가 있었다. 호불호가 있지만 말이 많다거나, 심지어 쓸데없는 이야기를 한다고 비난을 하는 사람들을 아주 가끔 온라인 댓글에서 만나기 때문이다.     


오프라인에서 강의하는 스타일이 온라인으로 옮겨 간다고 많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나만의 강의 스타일 일수도 있지만 나름의 절제를 통해 개선하고 있다. 그러나 완벽까지 도달하기는 어렵다.     


청중의 반응만으로 고민의 길에 섰던 것은 아니다. 나 역시도 강의를 하고 나면 바닥이 나는 에너지에 지칠 때가 있었다.      


최근 읽고 있는 [말하기 태도]라는 책에서 이런 구절을 만났다.


함께 일할 친구를 뽑을 때 보는 게 애정, 열정, 충정 이 세 가지인데, 반대로 내가 배우나 작가를 섭외할 때도 애정, 열정, 충정, 내가 가진 이 세 가지를 보여준다.

     

이 문장을 통해 조곤히 강의할 수 없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나에게는 노인에 대한 애정이 있다. 강의를 시작했던 16년 전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노인 강의를 진행하면서 우리나라 노인의 실태들을 알게 되었다. 직접 경험은 아니지만 교재 속 내용과 수많은 영상들을 접하며 나도 모르게 긍휼의 마음이 스며들고 있었다.     


슬그머니 스며들었던 마음들은 한평생을 나보다는 남을 위해 살아오신 부모님 세대에 대한 이해심이다. 치매라는 병에 걸리신 한 어르신은 “이 도둑년”이라는 욕설과 함께 주변 모든 사람을 도둑으로 몰아가는 피해망상(도둑망상)을 가지고 있다.     


물론 치매로 인해 발생하는 인지능력 저하의 증상 중 하나이다. 물건이 사라지면 찾아봐야 한다는 과정이 머릿속에서 지워진 상태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피해망상이 남자 노인보다 여자노인에게 더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에 의문점을 찍었다. 여자의 평균수명이 6~8년 정도 더 길어지니 치매로 인한 문제도 여자의 몫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말을 반박하자는 것이 아니다. 숫자로 언급하는 통계가 아닌 현재 80~90대에 있는 여자 노인의 지난 삶을 조명해 보고 싶었다.     


남아선호 사상은 구 시대적 사고로 남겨져 있다. 현대는 오히려 딸의 출생을 더 반기는 추세이다. 그러나 지금 시점의 시대적 사고가 아닌 80~90대 어르신들의 시대로 돌아가면 비로소 이해가 되는 것이 있다.    

 

여자로 태어나 내 것을 가져 본 적이 별로 없을 것이다. 양보와 빼앗김으로 살았던 시대이다. 그러니 이제 내 것에 대한 집착을 좀 가져보고 싶지 않았을까? 난 이렇게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그분들에게 줄 수 있는 것들을 넘치게 전해 주라는 이야기를 한다. 채울 곳이 없어 흘러넘치는 기쁨을 한 번쯤은 만끽해 보았음 하는 마음이다. 간식도 주머니마다 가득 채우고, 한 번의 포옹이 아닌 더 이상 받고 싶지 않을 때까지 꼭 안아주는 사랑 표현도 빠트리지 말라고 한다. 더불어 언어의 칭찬도 매일 해주라는 말을 건넨다.     

 

나에게는 열정도 있다. 애정을 담아 돌봄을 하는 돌봄 자가 되려면 열정은 필수 요소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열정은 호기심을 불러온다. 호기심은 섬세하게 관찰하고 끊임없이 질문하며 중도에 포기하지 않게 한다.     


노인이 조금 덜 힘들려면 돌봄 자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지?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말을 해드려야 하는 거지? 이렇게 하면 불편해하지 않으실까?라는 질문들을 늘 가지고 있었다. 그 내용이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를 통해 전해지고 있었다.     


내 유튜브 강의가 쉽고 빠르게 이해되는 이유가 “대상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라는 생각 때문이었다는 댓글을 받았다.

 치매 어르신에게 적절한 공감법으로 대화를 한 요양보호사를 찾아보라는 문제가 출제된다.     

어떤 요양보호사가 공감법을 적용해서 이야기했을까? 여기에만 초첨을 맞추니 어렵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나는 강의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요양보호사의 입장에서 찾으려고 하지 마시고요. 지금 내가 치매 어르신이라고 생각하며 보기 1~5번 요양보호사 중에서 어떤 사람이 가장 기분 좋고 따듯한지 찾아보면 답이 보입니다.”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호기심만이 상대방이 원하는 돌봄을 찾아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충정이 있다.  내가 소속되어 있는 교육원이 잘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참사랑 교육원 출신이라는 보증수표가 인정해 주는 돌봄 자들이 배출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언제나 모든 과정은 원칙을 고수하며 간다. 원장님이라고 할지라도 원칙에 어긋나는 것을 제안하시거나 언급하실 때는 거침없이 수정하려고 애를 쓰기도 한다. 아직 크게 부딪힘이 없는 것을 보면 나의 충정과 원장님의 운영방침이 한 방향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은 맞다.     


이렇게 세 가지는 나를 든든히 지켜주는 버팀목이 되었던 것이다. 이 내용을 깨닫고 나니 조곤히 강의할 수 없는 나 자신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지금처럼 조곤히 와는 조금 거리 두기를 지속해야겠다. 앞으로 가야 할 강의들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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