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초등학교 6학년 다음은 몇 학년이야?"
“중학교 1학년이지.”
“다시 1학년이 되는 거야?‘
“그렇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는 막둥이의 관심사는 온통 학년이다. 막둥이의 오빠는 중학생, 언니는 고등학생이다. 오빠, 언니를 통해 중고등은 3년을 다녀야 한다는 것도 조금은 알고 있는 눈치였다.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정적을 만나더니 이런 말을 꺼낸다.
“엄마, 고등학교 3학년 다음은 성인 1학년이야.”
“응?”
“20살이 되면 성인이 되고 그럼 다시 1학년을 하는 거지. 엄마는 45살이니까 성인 3학년이네.”
자기만의 시선과 생각을 담아 표현하는 최고의 작가는 역시나 아이들이다.
초등입학을 앞두고 있는 막둥이는 많은 감정들과 마주하는 듯해 보인다. 어느 날은 빨리 학교를 가고 싶다며 입학하는 날이 며칠이나 남았는지 손가락을 세어본다. 또 어느 날은 가기 싫어졌다면 더 쉬고 싶다고 한다.
설렘과 아쉬움이 막둥이 안에서 줄다리기를 한 판 벌이고 있는 것이다. 설렘이 승리하는 날은 새로운 친구들, 선생님과 함께 하게 될 순간들이 잔뜩 기다려지는 것 일 테고, 아쉬움이 승리하는 날은 이미 추억이라는 글자 안에 담았던 유치원의 행복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이별에 대한 아쉬움이다. 수도 없이 많은 이별을 경험하지만 언제나 그 사람과는 첫 이별 아니던가.
000 유치원 선생님과는 처음 하는 이별이다. 000 친구와는 처음 하는 이별이다.
스승의 날 유치원 선생님을 다시 찾아가고, 학교 수업이 일찍 끝나는 날 선생님을 다시 보러 가면 된다고 스스로 아쉬움을 토닥이기도 한다.
이런 막둥이의 모습을 한참 바라보고 있자니 성인 3학년이 된 나도 첫 이별을 변함없이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막둥이와 다른 것이 있다면 이별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은 달라졌을 뿐이다.
얼마 전 브런치에 [나이 드는 것은 애도에 익숙해지는 것이다]라는 글을 작성했다. 이 글에 수록된 류시화 작가님의 글을 다시 한번 꺼내보고자 한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새로운 기회를 얻는 것임과 동시에 절은 시절이 끝났음을 의미하는 것도 알아가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자신에게 펼쳐질 새로운 미래와 성장의 기회를 기뻐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지금까지 함께 했던 사람, 직장이나 학교, 장소들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충분히 인정하며 지나간 일들에 감사하고 그것이 사라지는 것을 애도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 감사와 애도가 그를 비워 새로운 것이 들어올 수 있도록 길을 마련한다.
<나는 나> 류시화 지음
나도 이제는 이별이라는 것을 만나게 될 때 애도라는 절차를 거치려고 노력한다. 그것은 언제나 감사만을 남겨 두는 것이다.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만남의 의미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이별도 애도로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
성인이지만 다시 1학년부터 시작할 수 있어 다행이다. 어디서든 1학년은 너그럽게 봐줄 수 있는 학년이다. 실수해도 괜찮다. 1학년이니까. 그러니 너무 완벽해지려는 척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완벽보다는 실수를 줄여가는 삶이 더 현명하다. 나는 고작 성인 3학년 밖에 안 되었으니 아직도 실수를 줄여가는 과정 속에 놓여있는 사람이다.
막둥이가 아마도 이런 나를 위로해 주고 싶었던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또 하나를 묵직하게 안겨주었다.
“엄마, 오늘 도서관도 같이 가고 카페에 가서 책도 읽고 맛있는 것도 사주고, 같이 이야기도 해줘서 고마워.”
“그랬어? 엄마는 하영이를 사랑하니까 당연히 이렇게 해줄 수 있지.”
“음.. 그럼 엄마가 할미 3학년 되면 나도 엄마랑 카페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고, 책도 읽어줘야지. 하영이도 엄마를 사랑하니까.”
“진짜? 와~~~~ 엄마 얼른 할미 되고 싶다.”
막둥이의 나이 시계는 어떻게 돌아가는 것일까?
20대는 성인 1학년, 30대는 성인 2학년, 40대는 성인 3학년, 50대는 성인 4학년, 60대는 성인 5학년, 70대는 성인 6학년, 그다음은 할미라고 하면 100세는 되어야 할미 3학년이 된다.
한참 막둥이의 생각대로 나이 계산을 하다가 웃음이 나왔다.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할미가 된 엄마에게도 행복한 순간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막둥이 마음이 기특하고 이쁘다.
“엄마, 집에 있어? “
“응, 왜?”
“나랑 카페 가서 책도 읽고 엄마가 좋아하는 커피도 마시러 가자.”
“정말? 좋아. 알겠어.”
할미 3학년이 된 목소리로 대화를 들려주었더니 막둥이는 배꼽을 잡고 웃는다.
하영아, 그 마음으로도 충분해. 성인 3학년이 된 엄마는 이제 조금 알 것 같아. 자식은 존재 자체로도 참 귀한 선물이더라. 무엇을 해서 귀해지고 무엇을 하지 않아서 하찮아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만들어준 가치가 엄마에게는 가장 소중한 선물이야.
이 말을 이해하게 되려면 우리 막둥이는 성인 몇 학년이 되어야 할까? 그때를 상상하니 할미 몇 학년이 된 내가 보여도 하나도 억울하지 않다.
그저 행복한 웃음이 내 얼굴과 온 마음을 따스히 덮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