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철학 전공하셨어요?”
처음 이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순간 멈칫했다. 간호학을 전공한 간호사이고 돌봄의 기술을 교육하는 요양보호사 강사 자리에 오래 있었던 나에게, 이 질문은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니요, 간호학 전공자입니다.”라고 답을 하긴 했지만 질문이 나오게 된 이유들은 글을 쓰며 찾아가 보려고 한다.
내 강의의 주제는 늘 돌봄이었다. 강의 시간이 거듭 될수록 이 영역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관계의 예술이라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강의 중에 ‘사람’에 대해, 그리고 ‘삶’에 대해 말하고 있었던 것 같다. 철학 전공자냐는 질문은 어쩌면 그런 나의 말과 태도에서 비롯된 무의식적인 공감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요양보호사, 병원동행매니저, 생활지원사 같은 직업을 양성하는 교육을 하고 있다. 이 직업들의 공통점은 ‘사람을 돌보는 일’이라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건 인간이다. 아픈 사람, 외로운 사람, 노화로 인해 천천히 변화해 가는 사람, 그런 사람과 마주할 때 우리는 어떤 눈으로 어떤 마음으로 바라봐야 할까?
실무 중심의 직업 교육이라 해도 이 질문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었다. 현장에서 요구하는 기술만을 가르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기술은 결국 사람을 향해 쓰이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나도 모르게 철학의 문턱으로 향해 있었다.
강의를 하며 느꼈다. ‘돌봄’은 단순히 식사 도움을 주고, 청결을 관리해 주는 일이 아니었다. 돌봄은 누군가의 하루에 함께 존재하는 일이고, 때로는 그 사람의 마지막 삶의 한 조각을 함께 채워주는 일이다. 이토록 무게 있는 일을 단지 ‘직업’이라는 이름으로만 받아들이기엔 어딘가 부족했다. 그래서 질문하게 되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왜 누군가는 외로움을 느끼고, 누군가는 작고 소박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는가?
나는 그 사람의 어떤 순간을 함께 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들은 철학책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돌봄 현장에서는 매일같이 그런 질문들이 생겨났다. 손을 잡아주며, 말없이 함께 앉아 있으면서, 밥 한 숟갈을 천천히 떠먹여 드리는 과정에도 반드시 있다.
돌봄은 철학적인 실천이었고, 나의 강의는 그 실천에 함께 발을 디딜 수 있는 발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수강생들이 종종 내게 이런 말을 건네곤 했다.
“교수님 강의를 들으면 마음이 움직여요.”
이 말은 그 어떤 칭찬보다 내게 깊게 다가왔다. 왜냐하면 내 강의가 지식만을 전달하는 자리가 아니라, 마음을 여는 시간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때론 나는 수업 중 책을 소개한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최진석 교수님의 『나를 향해 걷는 발걸음』 같은 책들이다. 실무서가 아닌 철학서나 인문서를 함께 나누는 이유는 단 하나다. 이 일은 결국 ‘사람’을 위한 일이기 때문에, 인간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함께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배우는 중이다. 줌바 댄스를 배우며 몸을 즐겁게 쓰는 법을 익히고, 책을 읽으며 여전히 질문하는 법을 배우고 글을 쓰며 나만의 답을 찾아가는 법을 배운다. 20대의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를 고민했다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묻는다.
철학이란 멀리 있는 학문이 아니었다. 우리가 살아가며 반복해서 묻게 되는 근원적인 질문들이다. 그리고 그 질문에 성실하게 다가가려는 태도가 결국 나를 지금 이 자리까지 이끌어 준 것이다.
나는 강의가 지식을 채워주는 시간이기보다는 질문을 열어주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질문은 혼란을 줄 수도 있고 답답할 수도 있지만 결국 우리를 진짜 삶에 가깝게 데려다준다.
내 수업이 가끔 어려워서 해석하기 힘들다는 분들의 이야기는 이런 이유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힘듦을 견뎌내고 나아갈 때만 나만의 삶과 방식, 철학을 찾아간다.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누군가를 돌본다는 건 어떤 의미입니까?”
이 질문을 품고, 강의장에 매일 선다.
나는 간호학을 전공한 간호사가 분명하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것은 ‘사람’이고, 내가 궁금한 것은 ‘삶’이며, 내가 꿈꾸는 것은 ‘돌봄의 철학’이다. 비록 전공은 아니지만 삶이라는 학교에서 철학을 배우고 있는 학생임을 오늘도 증명한다. 그래서 철학 전공자냐는 질문을 받을 때면 따스한 미소가 찾아온다.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는 학생이야 말로 가장 성실한 학생이니까.
오늘도, 그리고 앞으로도 나는 그런 학생으로 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