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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왜 이러세요”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결코 변하지 않는 엄마의 '고집'

by 쉬리


우리 엄마는 여장부이십니다.


올해로 90세가 넘으셨습니다. 이 연세쯤 되면 대부분의 어른들이 그렇듯이 무릎이 안 좋아 걸음걷기를 힘들어 하십니다. 다행이도 달리 아프신 곳은 없지만 기운이 예전 같진 않으시죠. 그런데 기억력은 정말 비상하십니다. 병원 예약일은 물론이고 가족은 물론 주변 사람들 관련된 일상들을 누구보다 정확히 기억하십니다.


좀 더 젊으셨을 때는 겁없고 억센 아줌마이셨습니다. 한 번은 버스에서 소매치기 일당이 젊은 여성의 지갑을 훔치는 것을 보고 소매치기 중 한 명의 허리춤을 잡고 “이 놈 내가 다 봤다. 왜 지갑을 훔치느냐”며 버스기사에게 “경찰서로 버스 몰고 가라”고 소리치셨답니다. 이내 다른 일당이 “지갑 여기 떨어졌네”하고 주워주며 그대로 줄행랑을 쳤다고 합니다. 엄마 40대 초반의 일입니다.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일이죠. 당신 생각에 잘못된 일이다 생각되면 누가 뭐라고 해도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이런 무용담 같은 일이 자주 있지는 않았지만 평소에 누구를 대할 때든 주눅든 모습을 본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자식에 관련된 일만 빼고.


지난 봄 어느 날 저녁에 엄마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대뜸 “집에 오는 요양사가 돈에 손을 댄 거 같다”는 것입니다. 그 요양사는 전에도 몇 번 뵌 적이 있는데 그럴 분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엄마에게 잘 찾아보시라고 그럴 분이 아니라고 몇 번이나 말씀 드렸는데 막무가내였습니다. 그 날이 토요일이어서 주말 지나고 월요일에 오면 따져 봐야겠다고 하셨습니다. 나도 가보겠다고 말씀 드리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월요일 아침 사달이 났습니다. 요양사가 억울하다고 경찰까지 불렀습니다. 서둘러 엄마 집으로 갔습니다. 요양사는 눈이 벌게 있고 경찰은 난감해 하고 있었죠. 난 엄마가 착각할 리가 없다고 믿고 있었지만 요양사가 가져갔다는 증거도 없고 그럴 분이 아니라는 생각이 여전히 강하게 들었습니다. 일단 경찰관에게는 다시 잘 찾아보고 마무리 하겠다, 필요하면 연락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요양사께도 일단 돌아가시라, 내가 다시 찾아보고 연락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엄마는 왜 경찰이 그냥 가느냐, 요양사는 왜 그냥 보내느냐며 젊으셨을 때의 기운을 되찾은 듯 고성을 내셨습니다. 저는 그냥 가는 게 아니라고, 다시 오기로 했다고 진정 시켜드렸습니다. 그리고는 돈을 두었었다는 장롱을 싹 뒤집어 찾아보았습니다. 사실 안 찾아지면 내 돈이라도 대신 놓아두려는 생각도 했습니다.


이런... 엄마가 돈을 넣어두었다는 가방 아래 쇼핑백에 이상한 봉투가 들어 있었습니다. 정말 교묘하게 다른 봉투와 섞여 있었습니다. 엄마가 쇼핑백에 넣어 놓고 착각했을까? 아닐 겁니다. 떨어진 게 맞습니다. “여기 떨어져 있네. 엄마 도대체 왜 이러세요. 멀쩡한 사람 도둑으로 몰고” 저는 얼른 요양사에게 전화 했습니다. 어서 오셨으면 좋겠다. 찾았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곧 요양사가 다시 오자 엄마는 “내가 큰 실수를 했다. 정말 미안하다”며 요양사를 부둥켜안고 사과하셨습니다. 요양사는 눈물을 흘리며 찾아서 다행이라며 기꺼이 사과를 받아주셨습니다. 사실 요양사 어머니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며 고맙게도 이해해 주셨습니다. 그러고는 저에게 걱정스런 눈길로, 어머니가 요즘 부쩍 묻고 또 묻는 경우가 많다고 신경 쓰시는 게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정말... 혹시...


요양사가 돌아가고 엄마에게 제발 남 의심 좀 그만하라, 이게 무슨 낭패냐며 다그치듯이 몰아세웠습니다. 엄마는 “그게 거기 떨어져 있을 줄이야 누가 알았겠니”하시며 곤란해 하셨습니다. 저는 엄마 집에 더 있기도 싫어 그만 가겠다며 일어섰습니다.


막 나가려는 데 엄마가 절 다시 부르셨습니다.

“너 아직 오라는 데는 없니? 네가 일을 좀 더 했어야 했는데”하시더니 “사실 이 돈 너 주려고 모아 두었던거야. 가져가라. 없어진 줄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이젠 찾았으니 됐다”하며 봉투를 내미셨습니다.


“아 참, 엄마... 진짜 왜 이러세요”

저는 억지로 손에 쥐어 주는 봉투를 들고 도망치듯 집을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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