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로서 첫 발 내디디기
부산에 있는 둘째 형에게 전화가 온 건 퇴직 후 일주일 여 지난 뒤였습니다.
“생각해 봤니? 정말 놓치기 아까운 곳이야. 사정이 되면 나라도 해보고 싶은데 난 하는 일이 있어서...”
형이 장사를 하는 상가의 지하식당 얘기였습니다. 가게 숫자가 1천개가 넘는 대규모 단지의 지하상가에 식당 자리가 나왔다는 것입니다. 현재 세 곳이 영업 중인데 점심시간에 줄서서 먹는다며 최소한 3회전은 가능하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어떤 변화의 순간에 한가지의 선택지만 오는 법이 없습니다. 그때 저도 그랬습니다.
저는 재취업을 할까 아니면 실업급여가 나오는 동안 잠시 쉬어볼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형 얘기에 솔깃했던 것은 재취업해서 받을 급여나 실업수당으론 생활을 제대로 이어가기가 여의치 않았던 이유도 있습니다.
더구나 조건이 좋았습니다. 인테리어 공사를 상가 조합에서 해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집기에 투자하는 비용 정도면 됐던 것이지요. 또 주방장을 포함해서 함께 일할 사람들도 바로 구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상권 좋고 투자금 적게 들고 사람도 구해져 있고. 뭐 망설일 이유가 없었습니다.
물론 문제가 없던 것도 아닙니다. 우선 하루 한 끼, 점심장사만 할 수 있었습니다. 저녁에 상가 철시 후에는 영업을 할 여건이 안됐습니다. 또 가족들과 헤어져 부산으로 내려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전 장사를 해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요리도 할 줄 모르고 심지어는 부추와 잔디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준비가 안되어 있었습니다.
그래도 하루 한 끼 장사는 어차피 그만큼 비용도 덜 드니까 해볼만 하다고 판단했고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건 매일 집에서 빈둥대는 것보다 더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월급쟁이만 했던 내가 장사를 할 수 있을까 이게 가장 큰 두려움이었습니다. 아내는 극구 만류했고 아이들은 반반이었습니다.
자영업 실패 사례를 너무도 많이 듣고 본 터라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다짐했습니다. 현장에 수차례 가보고, 창업관련 책도 몇 권 일고, 유튜브도 보고, 손익 계산도 거의 매일 해봤습니다. 따져 보았더니, 하! 괜찮았습니다.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600만원 정도의 수익은 기대할만 했습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안될 것 같았습니다. 형이 고마웠습니다. 드디어 한 달여 고민 끝에 도전해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미 결심은 했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창업자들이 그럴 것 같습니다. 아무튼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는 저도 특별하진 않았습니다.
준비는 비교적 순조로웠습니다. 집기 준비나 가게 구조 공사는 어차피 제가 봐야 알지도 못하니 부산에 함께 일 할 분이 경험이 많은 분이어서 다 맡아 해주셨습니다. 무조건 믿고 맡겨서 되겠느냐고요? 물론 안되죠. 그런데 그 일을 맡아 해주시는 분이 전부터 몇 번 뵈온 분이어서 든든했습니다. 진행 상황만 듣고 몇 가지 결정만 해주면 됐습니다. 저는 비용과 운영자금 계획, 행정적 절차에 집중했습니다.
아 참, 생각해보니 준비하는 중에 현타가 온 적도 있긴 합니다. 보건증 발급받으러 가는 날 이었습니다. 검사를 받아본 분은 아시겠지만 정말 별 것 아니지만 회사생활만 해본 사람에겐 약간 쑥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제가 검사를 받으러 보건소 들어가는 제 뒷모습을 보고 아내가 눈물이 핑 돌았다는 얘기도 나중에 들었습니다. 또 위생교육을 받을 때 제가 거의 최고령이었던 것이 좀 민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이런 것들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희망에 가득 찬 때 이었으니까요.
전 장사를 하기 전까지 매일매일을 시간에 쫓기고 가치 판단을 해야 하고 평가받아야 하는 일에 종사했습니다. 조금의 실수도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직종이었습니다. 업무 강도나 스트레스가 상당했습니다. 그런 만큼 사회적으로는 소위 ‘갑’에 해당하는 직업이었습니다.
저는 개업을 준비한 식당 종류는 한식당 이었습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한식당을 하는 사람은 전생에 죄가 정말 많은 사람이라고요. 식당 중에도 가장 힘들다는 뜻이지요. 몸뿐 아니라 마음도. 식당 사장은 ‘을’입니다. 직업의 귀천을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일 자체가 힘들고 고됩니다.
이렇게 저는 넥타이 매고 지내다가 앞치마로 바꿨습니다.
어쩌다 보니 인생2막에 초보 사장으로 벼랑 끝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벼랑 끝은 추락이란 길만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날아오를 수도 있으니까요.
힘찬 날갯짓을 해보자고 마음을 굳게 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