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 속에서, 나를 다시 데려온 공간에 대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주어졌을 때,
나는 진심으로 그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선택했다.
퇴사 이후 한 달 남짓,
낮잠을 자고, 산책을 하고, 멍하니 하루를 흘려보냈다.
그 시간들은 분명 필요했고,
나는 그것들을 핑계 없이 받아들였다.
하지만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고 나서야
비로소 나 자신에게 들키는 순간이 왔다.
‘이제는 다시 시작해야 하지 않겠어?’
그 말이 조용히 마음속에 머물렀다.
그 무렵,
나는 국민취업지원제도 1유형에 선정되었다.
그 말은 곧,
“이제 다시, 무엇이든 해보자”는 하나의 시작점이었다.
자격증 공부도 있었고,
언젠가는 다시 제대로 해보고 싶었던 글쓰기 루틴도 있었다.
하고 싶은 것들은 분명 있었는데,
막상 시작하려고 하자 한 가지 문제에 부딪혔다.
공간이 없었다.
처음엔 집에서 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집이라는 공간은,
어느새 내게 ‘쉬는 장소’로만 각인되어 있었고
몰입하려는 마음은 자꾸 그 벽에 부딪혔다.
그러다 문득 도서관이 떠올랐다.
사실 이유는 단순했다.
덥기도 했고, 뭔가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으며,
그날 따라 괜히 도서관이라는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기 때문이었다.
예상보다 큰 건물이었다.
자동문이 열리고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쾌적한 공기,
그리고 줄지어 앉아 공부하고 있는 사람들.
그 풍경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묘하게 기분이 진정되었다.
어릴 적 나는 도서관을 자주 갔다.
책을 읽으러, 혼자 있고 싶어서, 혹은 그냥 조용한 데가 좋아서.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 조용함이 낯설어지고,
‘가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게 되었던 것 같다.
내가 다시 도서관에 앉게 될 줄은 몰랐다.
그것도 퇴사 이후,
삶의 구조가 잠시 비워진 시점에서 말이다.
책상에 앉아 노트를 펼쳤다.
복잡했던 생각들을 천천히 적어내려가며,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정리해봤다.
놀랍게도 집중이 잘 되었다.
무엇보다, 그 순간만큼은
‘나를 신경 쓰는 나’로 다시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문득 주변을 둘러보았다.
누구는 펜을 돌리고 있었고,
누구는 조용히 머리를 감싸 쥐고 있었다.
다들 저마다의 치열함을 끌어안고 있었다.
나는 그런 풍경을 한동안 잊고 살았다.
그러다 이제야 다시 돌아왔다.
조금 늦었지만, 지금이 내 타이밍일지도 모른다.
한 두시간 뿐이었지만,
그날 도서관에서의 시간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무기력하다는 이유로 미뤄두었던 나를
다시 데려온 공간.
그 안에서 몰입을 해보고,
작은 성취감을 느끼고,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는 느낌을 다시 받은 하루였다.
도서관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나는 그 자리에 다시 앉을 수 있었다.
앞으로의 여름,
이 공간을 자주 찾게 될 것 같다.
다시 공부를 하고 싶을 때,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할 때,
그리고 나를 다시 붙잡아야 할 때.
그 모든 순간마다,
나는 이 조용한 복귀선을 다시 걸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