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가의 따뜻한 휴식과, 다시 시작된 제주의 하루들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곳은 제주다.
처음엔 ‘살아본다’는
마음으로 잠시 머무르기 시작했지만,
어느새 이곳은 익숙한 삶의 터전이 되었다.
이제는 ‘본가’라는 단어보다,
‘내가 있는 이 집’을
더 먼저 떠올리게 된 걸 보면,
정말 이곳에서의 시간이 많이 쌓였구나 싶다.
하지만 그런 일상도
잠시 멈춘 시기가 최근에 생기게 됐다
회사를 퇴사한 뒤,
몇 달간 본가로 내려가 쉬며
마음을 추스르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가족 곁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속에 몸을 맡겼다.
하루가 길게 느껴지고,
저녁이면 자연스레 밥 냄새가 나는 집.
그 평온한 흐름 속에서,
나는 쉰다는 감각을 다시 배우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아직 수업 일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은 지금,
제주에서 조금 더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여유가 있을 때 이 공간에 더 머물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짐을 싸고, 비행기를 타고,
이곳으로 돌아왔다.
며칠 전의 일이다.
짐을 푸는 손끝이 아직 어색할 틈도 없이,
생활은 바로 시작되었다.
세탁기를 돌리고,
밀려 있던 일정들을 하나씩 꺼내 정리하고,
바로 약속들이 생기고,
다시 ‘살아가는 하루’들이 시작됐다.
본가에서의 시간은 내게 고요한 휴식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제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
공항에서 짐을 찾던 그 짧은 순간에
‘내가 다시 이곳에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익숙한 공간인데도, 조금은 낯설었다.
내가 선택한 삶인데도, 잠깐은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 마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사람은 살아가는 법을 다시 익히게 되고,
환경에 조금씩 맞춰 움직이며,
어느새 다시 ‘그냥 살아가게’ 된다.
며칠이 지나고,
처음으로 혼자 있는 시간이 찾아왔다.
집 안은 떠나기 전 그대로 정돈돼 있었지만,
막상 앉아 있으니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많아졌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구석들,
정리된 공간 안에서도
손을 대고 싶은 자리가 눈에 띄었다.
생각해보면, 변한 건 집이 아니라 나였다.
조금은 다르게, 조금은 더 또렷한 시선으로
이곳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는 건
지금의 내 마음이 예전보다
더 안정된 상태라는 뜻일지도 모른다.
요즘은 무계획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깨어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피곤하면 잠을 잔다.
어쩌다 보니 생활 리듬은 흐트러졌고,
밤이 길어지고 낮이 짧아졌지만
억지로 되돌리려 애쓰지는 않는다.
지금은 조금
느슨해져 있어도 괜찮은 시기니까.
베란다에 서면 멀리 바다가 보인다.
새벽이면 오징어잡이
배들이 불을 밝히고
떠 있는 장면도 자주 마주하게 된다.
마치 바다 위에 별이 떠 있는 것처럼,
그 풍경은 늘 같은 말처럼 느껴진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
지금은, 그냥 여기 있어도 돼.”
그 말이 마음속에 차분히 내려앉는다.
하루하루가 특별하지 않아도,
그 하루들이 나를 회복시키고 있다는 걸 느낀다.
삶이 조용하게 나를 감싸는 이 순간들이
어쩌면 다음을 위한 가장 큰 준비일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다시 이곳에서 적응 중이다.
조금 더 나은 마음으로,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용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