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뒤, 내가 나를 다시 배우는 과정
처음에는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줄 거라 믿었다.
사람들은 그렇게 말했으니까.
시간이 지나면 잊혀진다고,
어느 날 문득 아무렇지 않게 된다고.
그런데 내 시간은 그런 식으로 흐르지 않았다.
시계는 돌았지만,
나는 제자리에 붙박여 있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은 더 선명해졌다.
함께 웃었던 말투, 내가 가장 좋아했던 그의 표정,
잠깐 스쳐간 계절의 냄새까지도
내 일상의 구석구석에서 살아 움직였다.
그것들은 도망치려 하면 할수록
더 집요하게 나를 따라왔다.
마치 “네가 아직 마주하지 않은 것이 있다”고 속삭이는 것처럼.
결국 나는 도망치는 걸 멈췄다.
울음을 멈출 수 없으면 그냥 울었고,
잊지 못하겠으면 애써 잊지 않기로 했다.
어쩌면 치유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억지로 밀어내는 게 아니라,
내 안에서 완전히 태워 없어질 때까지 곁에 두는 것.
그렇게 울고, 회상하고,
스스로를 질리도록 되뇌던 끝에야 아주 조금씩 진실이 보였다.
나는 그 사람을 그리워한 것이 아니었다.
사실은 그때의 나를 이해하지 못해서 계속 돌아보았던 거다.
왜 그렇게 서툴렀는지,
왜 그렇게 쉽게 무너졌는지,
왜 그렇게 간절했는지.
아픈 이유는 그 사람 때문이 아니라,
그 시간 속에서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아직 납득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 깨달음 이후부터 조금씩 달라졌다.
거울 앞에 선 나를 더 이상
‘버려진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게 되었고,
실수투성이였던 그때의 나를 비난하지도 않게 되었다.
오히려 그 시절의 나는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했고,
믿었고,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인정을 시작하자 기억이 덜 아프게 다가왔다.
더 이상 과거의 나는 미련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의 대상이 되었고,
그 이해는 서서히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하지만 이제는 안다.
시간을 견디게 하는 건
결국 나 자신을 이해하려는 용기라는 것을.
사랑이 남기고 간 잔해를 치우는 일은 시간이 해주는 게 아니다.
나라는 사람을 끝까지 바라보는 내가 해내는 일이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 다른 마음으로 말할 수 있다.
그 사랑이 없었더라면
나는 아직도 나를 잘 모르는 채로 살았을 것이다.
상처를 통해서만 알 수 있는 내 모습이 있고,
아픔을 통과해야만 만날 수 있는 내가 있다.
나는 그렇게 나를 다시 배우는 중이다.
그리고 그 배움이 끝나는 날이 오지 않기를 바란다.
사랑은 끝났지만,
나를 아는 일은 아직 한참 남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