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이 사라지지 않아도 괜찮다고 느낀 오후
어느 날 문득,
아무 이유도 없이 걸음을 옮기고 싶어졌다.
마음속에서 오래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불안이 너무 무거워서,
그냥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목적지도, 만나야 할 사람도 없었다.
그저 걷고 싶었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길목,
공기가 조금은 느긋해진 날이었다.
나뭇잎 사이로
흘러드는 빛이 간질이듯 어깨를 스치고,
사람들의 발자국이
길 위에서 사라졌다 다시 생겼다.
평범한 풍경인데도 낯설게 다가왔다.
한동안 나의 시선은
늘 안쪽을 향하고 있었으니까.
마음속 어딘가를 계속 들여다보다 보니,
바깥의 계절을 잊은 채로
살고 있었던 것이다.
불안은 늘 내 곁을 따라다녔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하루가 무너지고,
답장이 오지 않는 몇 시간에 온 신경이 쏠렸다.
내가 보낸 마음이 돌아오지 않을까 봐,
돌아온 마음이 언제 식을까 봐 늘 조급했다.
그러다 보면
결국 나 자신을 의심하게 된다.
이렇게까지 사랑을
쏟아도 괜찮은 걸까,
혹시 나는 사랑받기엔
부족한 건 아닐까.
그런데 그날,
별다른 사건도 없이 걷고 있을 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불안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다만, 그것이 나를 짓누르지 않았다.
마음 한쪽에 자리한 채로
조용히 숨을 고르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것을
없애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고,
그냥 데리고 걷기로 했다.
작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길가에 핀 민들레 한 송이,
느리게 움직이는 구름,
지나가다 마주친 고양이의 눈빛.
그 모든 사소한 것들이
내 안의 무게를 조금씩 덜어냈다.
누구의 말도,
확인받는 사랑도
아닌 것들이 나를 안심시켰다.
그때 알았다.
불안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불안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마음이 불완전하다고 해서
사랑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불완전함 속에서
나는 조금 더 단단해졌다.
지금도 가끔
이유 없는 불안이 찾아온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것이 나를 더 깊이 들여다보게
만드는 힘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여전히 그림자는
나를 따라오지만,
나는 이제 그것을 짐처럼
여기지 않는다.
그냥 함께 걷는
동반자처럼 받아들인다.
그날 오후의 공기처럼,
삶은 그렇게 조용히 나를 다시 안심시켰다.
불안이 완전히
사라진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이제 나는 그것과 함께
걷는 법을 조금은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