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아 보이던 모든 사람들이, 사실은 각자의 어둠을 다독
가끔 밤에 카페에 앉아 있으면,
창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이 유난히 느리게 흐른다.
누군가는 커피를 들고 서둘러 걸음을 옮기고,
누군가는 이어폰을 꽂은 채 표정 없는 얼굴로 지나간다.
모두가 멀쩡해 보인다.
아무 문제 없이 오늘을 통과한 사람들 같고,
각자의 삶이 잘 맞물려 굴러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모습을 오래 보면 알게 된다.
그 멀쩡함의 겉면 아래에는
각자의 혼란과 균열이 숨어 있다는 것을.
흔들리는 사람은 나 하나만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들의 속이 더 궁금해졌다.
커피잔을 들고 앉아 고개를 끄덕이는 그 표정이,
실은 하루 동안 밀려온 감정들을 삼켜낸 흔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멀쩡해 보이는 그 사람이
계속되는 불안 때문에 밤마다 잠을 설치고 있을지,
누군가에게 설명하지 못한 슬픔을
이곳에서 조용히 오래 씹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
그런 상상을 하게 되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금 놓였다.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이건 비교의 안도감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존재의 보편성에 닿는 순간이었다.
누구도 멋지기만 한 상태로 오래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
겉으로는 잘 굴러가 보이는 삶들도 속에서는 어딘가 자잘하게 금이 가 있다는 사실.
그 사실이 나를 위로했다.
나는 스스로를 자주 자책하는 사람이다.
남들은 아무렇지 않게 넘기고 사는 일들을 나는 유난히 오래 끌어안고 고민해 버렸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를 밤새 곱씹고,
내가 잘못한 건 아닌가,
혹시 내가 부족해서 이렇게 된 건 아닐까 하고
끝없이 되묻곤 했다.
그럴 때면 세상 전체가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단지 나만 지나치게 예민하고 망가져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 조용히 혼자 있는 사람들을 지켜보다가 깨달았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안에 ‘말하지 못하는 혼란’을 품고 산다는 것을.
아무렇지 않은 얼굴 아래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두려움과,
정리되지 않는 마음과, 이해받지 못할까 봐 움츠러드는 감정들이
제각기 다른 모양으로 숨어 있다는 것을.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모두 그렇다는 사실이, 그 밤 나를 조금 구했다.
나는 그날 이후로
‘나 자신을 설득하는 방식’을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나를 자꾸 밀어붙였다.
괜찮아져야 한다고,
이 정도는 넘겨야 한다고,
이미 지난 일에 오래 머물면 안 된다고,
끊임없이 나를 꾸짖었다.
그런데 지금은 안다.
그런 방식은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더 깊은 구멍으로 끌어내린다는 것을.
꾸짖는 말에는 온기가 없고,
스스로를 몰아붙일수록
몸과 마음은 더 빠르게 식어버린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나를 설득하는 방식부터 바꾸었다.
우선, “그럴 수 있어.”
이 말을 나에게 허락했다.
실수할 수도 있고,
벼랑 끝처럼 느껴질 때도 있고,
남들이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일에
엉뚱하게 무너지는 순간도 있을 수 있다.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이기 때문에’라는 말이
이상하게도 오래 마음을 붙잡았다.
그 말은 핑계가 아니었다.
그건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허용해온 것들을
나에게도 조용히 허락하는 일이었다.
우리는 종종
남의 슬픔에는 너그러우면서
내 슬픔에는 지나치게 인색해진다.
다른 사람에게는
“너 그럴 수 있어.”
“괜찮아, 누구나 그래.”
이렇게 말하면서도,
정작 나는
단 하나의 흔들림에도
“왜 또 이러니.”
“넌 왜 그렇게 유난이야.”
무섭도록 차갑게 대했다.
그 부조리를 발견한 밤,
나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마치 오래된 벽에 가느다란 균열이 생기는 장면을
천천히 바라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 균열은 불안이 아니라
비로소 나에게 도착한 진실의 모양이었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나에게만 엄격했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나만 다르게 대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나는 나를 꾸짖는 대신
나를 이해해보려고 했다.
그날 밤,
나는 내가 얼마나 오래 외로웠는지 깨달았다.
언제부터인지 나는
누구에게도 솔직하지 못했다.
괜찮다고 말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고,
마음이 복잡해질 때마다
감정 대신 침묵을 선택했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택한 방식이었지만
결국엔 나를 지워버리는 방식이기도 했다.
그 침묵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나 스스로를 설득하지 못하면
세상의 어떤 위로도
나를 움직이지 못할 거라는 것을.
결국 나를 구하는 일은
나에게서 시작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한밤중 카페에서
잔잔한 음악과 낮은 조명의 아래에서
나에게 천천히 말을 걸었다.
“너 괜찮아.”
이 말이 아니라,
“너 괜찮아질 거야.”
이 말이었다.
괜찮다는 단언보다
괜찮아질 거라는 예감이
나를 훨씬 더 멀리 데려갔다.
그 말 안에는
지금의 나를 인정하는 감정과
앞으로의 나를 믿는 태도가
조용히 공존하고 있었다.
나는 그 둘을 동시에 잡아야 한다는 걸 비로소 알았다.
현재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미래를 의심하지 않는 일.
그게 ‘나를 설득하는 법’이라는 것을.
그날 밤 이후로
나는 조금 달라졌다.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아주 미세하게.
하지만 그 미세함이
내 삶의 균형을 다시 세웠다.
이제 나는
누군가의 멋져 보이는 겉모습에 쉽게 속지 않는다.
그들이 얼마나 고요하게 무너지고 있는지
내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나의 혼란도 더 이상 숨기지 않는다.
나도 누군가와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이미 절반은 구원받은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밤이 깊어지면,
나는 다시 나를 설득하는 시간을 갖는다.
오늘 있었던 일들,
내가 놓친 마음들,
내가 무너졌던 순간들을
차분히 떠올린다.
그리고 나는
어제의 나에게 하지 못한 말을
오늘의 나에게 건넨다.
“너는 잘하고 있어.
조금 흔들렸을 뿐이야.
흔들림은 무너짐이 아니야.”
이 말이
내일의 나를 살린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또 하나의 밤을 건넌다.
나를 설득하는 방식으로,
나를 잃지 않는 방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