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무너지는 사람들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하루를 건너면서도, 속에서는 조용히 금이 가

by 서녘

사람들은 흔들릴 때 소리를 낼 것 같지만,

실은 대부분 조용히 무너진다.


누군가가 주저앉기 직전의 마음은

대부분 말도, 표정도, 신호도 없다.


오히려 더 멀쩡한 얼굴을 하고

더 똑바로 서 있으려 애쓴다.


나는 그 침묵이 오래 궁금했다.


왜 사람들은 무너지는 순간에

그토록 조용해지는 걸까.


왜 울음보다 더 깊은 소리가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쪽에서 나는 걸까.


어느 날 나는 그 이유를 조금 알았다.


무너지는 건 소리를

낼 힘조차 사라지는 일이라는 것을.


카페에서, 버스 정류장에서,

밝은 지하철 창가에서


멀쩡한 얼굴로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가끔 그들의 조용한 균열을 상상한다.


휴대폰을 잡은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이유,


커피를 마시다 창밖으로 시선을 옮기는 그 순간,

말없이 페이지를 넘겼다가 다시 돌아오는 그 움직임.


그 모든 것이

‘지금 무너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마음’의

작은 신호처럼 느껴진다.


나는 그들의 침묵이 들렸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침묵이 나의 침묵과 겹쳐져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오래 조용히 무너지는 사람이었다.


겉으로는 늘 단단하고,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다.


붙잡을 것도 없고,

의지할 것도 없었던 시간에는

표정 하나, 한숨 하나조차

누군가에게 보이기 싫었다.


그래서 나는 더 밝게 웃었고,

더 바쁘게 움직였고,

더 멀쩡해 보이려 애썼다.


그러다 집에 돌아오면

아무 소리도 내지 않은 채

천천히 무너졌다.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소리 없이 울던 날도 있었고,


그냥 천장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한 날도 있었다.


그때의 나는

내가 유난히 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잘 버티는데

왜 나만 이렇게 쉽게 무너지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사람은 누구나

겉으론 멀쩡한 얼굴로 서 있으면서도

속에서는 자신만의 균열을 안고 산다는 걸.


그건 약함이 아니라

삶을 버텨내는 방식이라는 걸.


무너지는 사람은

약한 사람이 아니라

지나치게 오래 버틴 사람이다.


우리는 서로의 조용한 무너짐을 모른 채 살아간다.


친구의 웃음 뒤에 감춰진 피로,

연인의 말끝에 묻어 있는 망설임,

가족의 사소한 침묵이 가리키는 외로움.


그 모든 것을

너무 늦게 이해할 때가 많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큰 용기는

무너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인지 모른다.


그 인정은 부서지는 일이 아니라

나를 다시 세우기 위한 첫 번째 동작이다.


이제 나는 조용히 무너지는 사람들을 보면

예전과 다른 감정이 든다.


동정이 아니라,

이해에 가까운 감정.

누군가가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을 때

그 침묵을 텅 빈 공기로 보지 않는다.


그 안에는 분명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무게가 있다.


그리고 나는 그 무게를 아는 사람이다.


무너져본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무너짐에 다가갈 수 있다.


그 침묵에 몸을 기댈 수 있고,

말 없이 함께 있어줄 수 있다.


조용히 무너지는 사람들은

사실 가장 조용히 다시 일어서는 사람들이다.


나도 오늘

조금 흔들렸고

조금 금이 갔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흔들림이 나를 부서뜨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 세우기 위한 준비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무너지는 순간조차

나를 탓하지 않기로 했다.


무너진 자리에서

언젠가 새로운 균형이 자라난다는 사실을

나는 이제 믿는다.


조용히 무너지는 사람들 중 하나로서,

나는 오늘도 천천히 다시 일어난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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