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지 못한 마음이 남긴 것들

잠은 오지 않았지만, 그 밤이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건 아니었다

by 서녘

잠들지 못한 밤이 지나가면

아침은 늘 조금 무겁다.


몸은 쉬지 못한 티를 내고,

눈은 세상을 다시 맞이할 준비가 덜 된 채로 떠진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밤을

괜히 보낸 시간처럼 여기기 쉽다.


하지만 나는 점점 알게 된다.


잠들지 못한 마음이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일은 없다는 걸.


마음이 깨어 있던 밤에는

언제나 무언가가 남았다.


명확한 해답은 아니어도,

적어도 질문의 방향 하나쯤은.


그날 밤 떠올랐던 생각들,

끝내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 감정들,

괜히 오래 붙잡고 있던 장면들.


아침이 되면 흐릿해질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도 어떤 것들은 더 또렷해져 있었다.


그건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무엇을 미뤄두고 있는지,


무엇을 아직 포기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아주 솔직한 흔적들이었다.


잠들지 못한 밤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나를 속이지 못하게 했다.


낮에는

괜찮은 척하며 넘어갔던 일들이

밤에는 그렇지 못했다.


아무렇지 않다고 말했던 마음이

가만히 누워 있는 순간,

스스로의 허점을 드러냈다.


그 허점은 부끄러웠지만

나는 그걸 외면하지 않기로 했다.


왜냐하면 그 틈새에서만

진짜 내가 얼굴을 내밀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 순간들은

대부분 이런 밤 이후였다.


결심을 한 날이 아니라,

다짐을 크게 외친 날도 아니라,


그저 잠들지 못한 채

천장을 바라보던 그 밤들 뒤에서

조용한 변화가 시작됐다.


사람을 쉽게 포기하지 않게 된 것도,

내 감정을 조금 더 신중히 다루게 된 것도,


스스로에게 너무 잔인해지지 않게 된 것도

다 그런 밤들이 남기고 간 결과였다.


잠들지 못한 마음은

나에게 한 가지를 반복해서 가르쳐줬다.


감정은 밀어낸다고 사라지지 않고,

무시한다고 약해지지 않는다는 것.


오히려 가만히 들여다볼 때에만

자기 크기를 잃는다는 것.


그래서 나는 이제

잠이 오지 않는 밤을

조금 다른 눈으로 바라본다.


도망쳐야 할 시간이 아니라,

나를 다시 정렬하는 시간으로.


물론 여전히 힘들 때는 있다.


다음 날을 생각하면

이 밤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밤이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나를 속이며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걸.


잠들지 못한 마음은

나를 괴롭히기 위해 깨어 있었던 게 아니다.


그건

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

끝까지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아침이 오면

밤의 생각들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대신 다른 형태로 남는다.


조금 더 조심스러운 태도,

조금 덜 단정적인 판단,

조금 더 나에게 가까운 선택.


그게

잠들지 못한 마음이

내 삶에 남긴 것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 밤도 마음이 잠들지 않는다면

억지로 재우지 않으려 한다.


그 마음이 남기고 가야 할 것이

아직 끝나지 않았을지도 모르니까.


잠은 내일을 위해 필요하지만,

마음은 오늘을 정리하기 위해

깨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 밤이 지나고 나면

나는 또 조금 달라져 있을 것이다.


눈에 띄지 않게,

하지만 분명하게.


그리고 그 변화는

언제나 그렇듯

아무도 모르게 시작된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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